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10영업일 안에 최소 800억원 규모의 부채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수·합병(M&A)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자본잠식 상태인 이스타항공 여건상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조건이라 업계에선 사실상 계약 파기를 통보한 것으로 본다. 파산 위기에 놓인 이스타항공은 최대한 제주항공을 설득해 보겠다는 방침이다.
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전날 ‘이달 15일까지 선행 요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M&A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이스타항공에 전달했다. 지난 3월 계약 체결 당시 양사는 ‘이스타항공이 체불 임금, 조업료 등 미지급금 문제를 해결하고 태국 항공사 타이이스타젯과의 지급 보증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을 선행 요건으로 뒀었다. 이스타항공이 선행 요건을 해결하려면 당장 800억~1000억원이 필요하다.
현금이 없어 5개월간 직원 월급도 못 준 이스타항공이 해당 조건을 해결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제주항공이 계약 파기를 통보한 것과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제주항공이 코로나19 타격에 이어 이스타항공 대주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불법 증여 의혹, 임금 체불 등이 불거지자 M&A를 포기하려는 수순”이라고 말했다.
M&A 무산 시 파산을 막을 수 없는 이스타항공은 비상이 걸렸다. 현재 이스타항공은 자본잠식(자본 -1042억원) 상태로 협력사 대금도 연체 중이다. 특히 ‘대주주 지분 헌납’이라는 마지막 카드가 효과가 없자 당혹스러워한다. 이스타항공은 지난달 29일 이 의원 일가의 지분 38.6%(410억원 규모)를 회사에 헌납하겠다고 했었다.
이날 이스타항공 경영진과 노조는 각각 회의를 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사측은 남은 기간 제주항공을 설득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 일가를 집중 공격해온 조종사노조는 비판 대상을 제주항공으로 바꾸기로 했다. 3일부터 제주항공 모기업 애경그룹 본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연다.
향후 계약 파기 현실화 시 이스타항공의 체불임금, 셧다운을 두고 양사 간 책임 공방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3월부터 전 노선 운항을 정지하고 직원을 구조조정한 게 제주항공의 요구에 따른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셧다운 기간에 체불임금 250억원이 발생하는 등 경영 악화에 제주항공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반면 제주항공은 “셧다운 등은 이스타항공 경영진이 결정했다”고 반박한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