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만들고 유골은 덮고… ‘이춘재 살인’ 수사진도 유죄다

입력 2020-07-03 04:01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이 2일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종합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수원=윤성호 기자

엉뚱한 사람을 화성 연쇄살인범으로 만든 당시 수사 경찰과 검찰 직원들이 검찰에 송치됐다. 이들은 ‘화성 8차 사건’이 벌어지자 인근에 살던 장애인 윤모(53)씨를 고문해 거짓 자백을 받아냈다. 이듬해 화성에서 또 다른 8살 소녀가 살해됐을 땐 유골을 땅에 묻어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 결과를 2일 발표했다. 부산교도소 무기징역수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일 수 있다는 유전자(DNA) 분석 결과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한 지 11개월 만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1980, 90년대 경기도 화성 일대 여성 14명이 피살된 한국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이다.

악역은 이춘재만이 아니었다. 경찰은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관과 검찰 직원 9명을 ‘화성 8차 사건’ 가짜 범인을 만든 혐의로 진범 이춘재와 함께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화성 8차 사건 당시 소아마비 장애인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아무런 법적 근거나 절차 없이 75시간 동안 감금하고 잠을 재우지 않는 가혹행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화성군(현 화성시) 태안읍 박모(당시 13살)양의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범인으로 몰린 윤씨는 20년 동안 옥살이하다 2009년에야 가석방됐다.


형사계장 등 경찰 2명은 이듬해 초등학생 실종사건 때 피해자 유골 등 범죄 단서를 발견하고도 숨긴 혐의다. 윤씨를 범인으로 몬 것이 드러날 게 두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등학생 실종사건은 화성 야산에서 귀가하던 김모(8)양이 줄넘기에 양손이 묶여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유족들과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분, 그 외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손해를 입으신 모든 분께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한편 경찰은 이춘재가 모두 14명의 여성을 살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숨진 여성과 별개인 9명의 여성에 대해서도 성폭행과 강도를 저질렀다. 이춘재는 총 34건의 추가 범죄가 있다고 진술했지만 25건에 대해선 자백의 구체성이 떨어져 경찰은 9건에 대해서만 추가 범죄로 인정하기로 했다.

경찰은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이춘재가 성욕 해소를 위해 저지른 범행’이라고 규정했다. 이춘재는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내성적인 아이로 자랐다고 한다. 어린 시절 동생이 하천에 빠져 사망한 뒤 더 내성적이 됐다. 하지만 군입대 후 기갑부대에서 근무하며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이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전역한 뒤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자 욕구를 풀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춘재의 사이코패스 성향도 범행을 부추겼다. 경찰은 “진단검사 결과 그의 사이코패스 성향은 65~85%”라며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공감 능력이나 죄책감이 전혀 없다”고 했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