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에 만연한 고질적인 악습이 꽃다운 국가대표 출신 선수의 목숨을 앗아갔다. 23세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최숙현 선수가 전 소속 팀인 경주시청 감독과 팀 닥터, 선배들의 폭력과 폭언, 성희롱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고인은 생전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경기협회에 가해자를 상대로 진정서를 냈으나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세상을 향해 문을 힘껏 두드려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결국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최 선수의 지인은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차마 말로 담아낼 수 없는 폭행과 폭언, 협박과 갑질, 심지어 성희롱까지 겪어야 했다. 해당 폭력들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감독과 팀 닥터, 선배들은 식사 자리에서 최 선수가 체중 감량을 해야하는데 콜라를 시켰다는 이유로 20만원 정도의 빵을 억지로 먹였다. 감독에게 알리지 않고 복숭아 1개를 먹었다고 폭행했다. 몸무게 조절에 실패하면 사흘 동안 굶게 했고, 슬리퍼로 뺨을 때리기도 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가혹행위다.
권위만 앞세운 체육계의 삐뚤어진 문화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에도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자신이 겪은 체육계의 폭행과 성폭력에 대해 증언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스포츠계는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쇄신책을 내놓으라” “철저히 수사해 엄벌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잠잠해질 만하면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 어떤 억압과 폭력도 성적 향상 또는 대회 메달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학생 선수들이 코치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체육계 도제식 시스템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최 선수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중 처벌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또 귀중한 선수 한 명을 잃었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기필코 체육계에 깊숙이 퍼진 악습을 뿌리 뽑아야 한다. 사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설] 최숙현 선수 사망 계기로 체육계 악습 끊어야
입력 2020-07-03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