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억울한 누명 ‘같은 동네’ 박군… 가해자는 누구인가

입력 2020-07-03 04:08

“그 사건은 (미제 상태로) 종결됐는데요?”

프로파일러 A교수가 수년 전 경찰에 미제 사건에 대해 문의한 뒤 들었던 대답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수년이 지난 지난해 무기수 이춘재(57)가 범행을 자백하면서 새롭게 주목받았다. 결국 경찰은 2일 이춘재가 ‘청주방적공장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이춘재의 12번째 범행으로 기록됐다.

기자는 이춘재 자백 이후인 지난해 10월 충북 청주에서 피해자 박모(당시 17세)양의 부모를 만났다. 어렵게 설득해 동행한 동네 터줏대감은 박양 부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기자가 박양 사건을 너무 궁금해하길래…”라며 말을 흐렸다. 문은 1분 정도 후에야 열렸다.

박양 부모는 28년 전 차가운 겨울밤 공사장에서 발견된 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 정모씨는 “입 주변이 새파래질 정도로 재갈을 물려 묶은 흔적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손발을 속옷으로 묶는 것은 이춘재 범행의 특징이다. 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아이들이 일을 했는데 셋째 딸이 그렇게 됐다”며 괴로워했다.

고통 속에 살아온 이들은 박양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경찰은 사건 발생 3개월 후 같은 동네에 살던 박모(당시 19세)군을 검거했다. 박군은 경찰이 자신을 거꾸로 매단 채 짬뽕국물을 들이붓는 등 고문을 했고, 결국 고문과 회유를 못 이겨 범행을 시인했다고 주장했다. ‘가짜 범인’으로 옥살이를 하던 박군은 2년 후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들이 억울하게 고문을 당했다”며 울며 지냈다.

‘한 명(도)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라’는 말은 형사소송법의 원칙이다. 경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과 검사 등을 입건했다. 만약 그때 수사기관이 형소법의 원칙을 무겁게 받아들였다면 박군과 같은 억울한 피해자는 없었을 것이다. 가해자는 ‘진범 이춘재’만이 아니다.

과학수사 기법이 발달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미제 사건이 해결될 것이다. 범인이라는 누명을 썼던 사람에 대한 위로를 사회가 고민할 시점이 됐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