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들에게 한국 주식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개미들은 정보력과 자금력으로 무장한 기관들의 ‘작전’에 치이고, 치고빠지기를 밥먹듯 하는 외인들의 자판기 노릇을 하며 피눈물을 흘려 왔다. 그런데 정부가 최근 발표한 금융세제 선진화 방안과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관련 세법 개정안은 이처럼 낡은 주식시장을 뜯어고칠 방안은 빠트린 채 조세형평 구호를 동원한 선진국 세제 흉내내기에 그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증권거래세 인하 또는 폐지는 금융투자업계의 오랜 민원이었고 지난해 초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면담 이후 4·15 총선 공약으로 채택됐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수익 창출이 마땅찮은 기관들이 과연 자신들의 먹잇감인 개미들을 위해 거래세 인하 또는 폐지를 추진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개미들의 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개편이었다면 거래세 인하로 줄어드는 세수를 메우기 위해 개인투자자에게 양도세를 20~25%씩 덤터기 씌우는 결과가 도출됐을 리 없다. 기존 법인세만 납부하면 되는 기관과 조세 조약에 따라 대부분 자국에서 세금을 내는 외국인은 이번 개편안에 따라 양도세 부담은 없고 거래세 인하 혜택을 보게 돼 있다. 거래세 인하 효과를 보면 기관과 외국인이 개미의 50배가 넘는 혜택을 누린다. 역시나 개미만 ‘호갱’이 된 셈이다.
정부는 양도세가 2023년부터 상위 5%에만 부과돼 현재 수익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동학개미’ 과세가 아니라고 해괴한 논리를 편다. 또 양도세 부과분만큼 거래세를 깎아주므로 증세도 아니라고 한다. ‘증세 혐의’만 벗으면 된다는 행정편의주의에 주식 장기 보유 혜택 등 개인투자자 보호 대책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이번 개편안은 오히려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가파르게 만들어 시장을 혼란에 빠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락장에서 공매도로 무장한 기관과 외인들은 거래세 부담마저 사라질 경우 인공지능 로봇을 동원해 대규모 자전거래와 초단타 매매를 통해 개미털기가 더 용이해질 수 있다. 정치권에서 주식 양도세를 새로 부과하면서 기존의 증권거래세까지 존치시키는 이중과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여기에 말려들 경우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정치권은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원칙은 소득세에 한정된 상식에 속함에도 개미들이 주식투자에서 손해를 본 경우 소득이 줄었으므로 거래세를 납부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런 논리라면 부동산 거래와 보유 시 적용되는 양도소득세, 취득세와 재산세는 삼중과세이므로 하나만 남기고 다 폐지해야 마땅하다.
가뜩이나 초저금리 상황에서 과열로 치닫는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증시에 폭발력을 가진 세제 개편안을 들고 나온 것은 난센스다. 넘쳐나는 부동자금이 증시에서 빠져나가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거나 해외로 빠져나갈 때 발생할 혼란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정부와 정치권은 선진국처럼 양도세를 부과해 세제를 선진화할 경우 부동산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올 것이라고 아전인수격 해석을 쏟아낸다. 하지만 2017년부터 3년 동안 양도세를 물리는 대주주 요건이 바뀔 때마다 개인투자자들이 4조원 가까운 폭탄 매물을 쏟아낼 만큼 엄청난 폭발력을 지녔음은 분명하다.
동학개미들이 모처럼 주식투자 승전고를 울리는 와중에 그것도 2023년 시행 목표로 하는 사안을 코로나 비상대책을 다루는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거쳐 발표할 만큼 시급했는지 궁금하다. 1980년대 말 대만이 주식 양도세 과세를 서둘렀다가 40%대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자 결국 철회했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