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에 알바천국에서 보안으로 들어와 190 벌다가 인국공 정규직 간다. 연봉 5000 소리 질러~~ 졸지에 서울대급 돼버렸네 소리 질러 ㅋㅋㅋㅋ.’
청와대는 억울할 만하겠다. 딱 봐도 2030 취업준비생 골리려는 ‘어그로’인데, 이 허언(虛言) 때문에 비정규직 제로 여정에 제동이 걸렸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오른 글이다. 오픈 채팅방은 스마트폰 시대 청년들의 대나무숲이다. ‘우리 회사 김 부장은 개꼰대다’라고 외치고 위로받는 사이버 해우소랄까.
그 카톡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캡처돼 SNS에 오르내렸고 인터넷이 술렁였다. 일반직과 보안담당 직원조차 구별하지 못한 걸 보면 ‘빼박 can't’ 가짜 정보였다. 팩트 체크가 이어져도 분노한 여론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한 2017년 5월 12일을 기준으로 이전 입사자만 직접 고용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로또 정규직이냐’거나 ‘정규직은 대통령 하사품이냐’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여론은 청와대가 인국공 사태를 가짜뉴스 탓으로 돌리면서 악화됐다. 청와대는 또 거짓 정보가 언론에 유포돼 갈등이 심해졌다고 했다. 1차 책임은 가짜뉴스요 2차 책임은 언론에 있으니 내 탓 말라는 뜻이다. 그래도 부족했는지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나서서 “청년들의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다. 응시자에겐 큰 기회가 열리는 것”이라고 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페이스북에 “조금 더 배우고 필기시험 합격해서 정규직이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게 오히려 불공정”이라면서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은 없어야 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정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글에는 “그럼 당신은 왜 보좌관보다 월급 서너 배 더 받나요”라는 댓글이 달렸는데 나흘이 지나도록 답글은 없었다.
가짜뉴스는 원래 오래 못 간다. 트위터 같은 SNS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한두 번 가십성으로 퍼진 뒤 소멸한다. ‘찐’ 정보는 반대로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를 타고 삽시간에 확산된다. 그런데 간혹 가짜뉴스가 진짜보다 빠르게 번질 때가 있다. 시난 아랄 미국 MIT대 교수는 450여만 트윗을 연구해 ‘참신한’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보다 6배 빠르게 퍼진다고 분석했다. 어떤 게 있을까. 2007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미네르바 사건이 있다. ‘빵 없으면 케이크 먹으면 되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 역대급 무개념 발언 또한 가짜뉴스였다. 루소의 ‘고백론’에 나온 구절인데 프랑스 민중은 나쁜 소문에 귀를 기울였다. 가짜뉴스의 본질은 거짓이다. 하지만 그 거짓 정보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의 생각만큼은 진실이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앙투아네트가 미네르바가 인국공이 그렇다. 가짜뉴스의 역설이다.
붉은 여왕 효과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걸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왔다. 붉은 여왕은 체스판 모양을 한 벌판에서 앨리스 손을 잡고 달린다.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 앨리스가 투덜대자 붉은 여왕은 “여기선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해. 어디로 가고 싶다면 적어도 두 곱은 빨리 뛰어야지”라고 한다.
2020년 대한민국을 사는 청년들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 같다. 죽자사자 뛰는데 취업도 결혼도 내 집 마련도 멀어진다. 이런 이들에게 결과가 정의로우니 받아들이라는 건 아프니까 청년이고, 청년이니까 참으라는 소리랑 다름없다. 손대면 톡하고 꽃망울을 터뜨려야 할 청년들이 꽃망울 대신 울음부터 터뜨릴 기세다. 가짜뉴스에 빗대서라도 기회는 박탈당했고 과정은 졸속이었다며 하소연하는 이들을 토닥토닥 위로해주진 못할망정.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