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은 ‘잃어버린 얼굴 1895’ 개막에 앞서 2015년 공연의 전막 영상을 지난달 22일 오후 7시30분 네이버TV에서 스트리밍했다. 228명이 후원 기능을 통해 210여만원을 냈다. 지난 5월 서울예술단의 갈라 공연 스트리밍 때는 244명이 120여만원을 후원했다. 두 공연을 합쳐 목표로 삼았던 300만원을 넘겼다. 여기에 네이버가 같은 금액만큼 후원해 총 600만원을 국내 민간예술단체 공연 영상제작지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앞서 세종문화회관도 ‘자발적 유료화’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지난달 20일 진행한 ‘세종체임버시리즈 클래식 엣지’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 공연 후원 방식은 서울예술단과 같지만 최저 금액을 3000원으로 설정했다. 후원금은 연주자의 출연료와 공연 중계비로 사용됐다. 100여명이 참여해 110만원 가량을 모았는데 평균 1인당 1만1000원을 지급한 셈이다. 후원자는 공연의 라이브 음원과 10월 세종 체임버시리즈 공연 20% 할인권을 받는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대면 공연과 온라인 공연의 병행은 불가피하다”며 “언제까지 무료로 제공할 수 없는 만큼 유료화를 고민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시도는 관객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게 목적”이라며 “유료화는 민간단체가 시도하기 힘든 상황이라 공공단체가 먼저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료 온라인 공연 장기화는 악영향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장이 문을 닫으면서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이 붐을 이뤘다. 지금까지는 거의 무료로 진행됐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한 유료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미 관객이 온라인 공연의 장점을 경험한 만큼 예술단체(가)도 더 이상 대면 공연만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온라인 공연은 라이브 예술인 공연의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잘 만든 온라인 공연은 클로즈업이나 다양한 카메라 워크를 통해 공연장에서 직접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하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온라인 공연의 유료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경우 지난 3월 28일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 온라인 유료 콘서트를 열었다. 독일 베를린 텔덱스 스튜디오에서 생중계된 조성진과 괴르네의 공연의 입장료는 7.90유로(약 1만500원)였는데, 900명 이상이 연주를 지켜봤다. 조성진이 한 달 뒤 새 앨범 ‘방랑자’ 수록곡의 연주를 무료 스트리밍했을 때 조회수는 4만8000명(이틀간 누적조회수는 40만명)으로 차이가 컸다.
서울예술단 관계자는 “공연 애호가들에게 아직 유료 온라인 공연이 익숙하지 않은데다 영상 완성도 등 변수가 있다”며 “하지만 공연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위해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공연계도 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시민을 위해 무료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해왔다. 후원금을 받기도 했지만 무료 온라인 공연이 지속되면 공연 산업에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창작자에게 무급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유료를 내건 예술가(단체)가 최근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안무가 매튜 본은 자신의 댄스뮤지컬 ‘백조의 호수’ ‘카 맨’ 등 대표작 4편을 유료로 선보였다. 또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DG)도 최근 유료 온라인 공연 서비스 ‘DG 스테이지’를 시작했다.
유료 온라인 공연 플랫폼 구축 시급
온라인 공연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통해 수익이 만들어지고 그 수익이 다른 작품의 창출로 이어지는 시스템 구축이 필수다. 즉 유료 온라인 공연 플랫폼이 시급하다.
2008년 베를린필이 온라인으로 콘서트를 중계하는 ‘디지털 콘서트홀’을 만든 이후 해외에는 다양한 유료 플랫폼이 생겼다. 코로나19 이후 일부 공연이 무료로 공개되긴 했지만 베를린필의 경우 매월 14.9유로(약 1만9800원)의 유료 회원제로 운영된다.
대형 예술단체는 베를린필처럼 단독으로 플랫폼을 구축하기도 하지만 여러 장르를 다양하게 스트리밍하는 플랫폼도 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로열오페라하우스, 바비컨시어터,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BBC 등 50여개 주요 공연 관련 기관들이 참여한 ‘디지털 시어터(Digital Theater)’가 있다. 영국, 미국, 러시아 등 여러 나라 대형 예술단체의 작품을 스트리밍하는 ‘마퀴(Marquee) TV’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5월 출범한 미국 공연 영상 플랫폼 ‘브로드웨이 온 디멘드’(Broadway on demand)도 눈여겨볼 만하다. ‘브로드웨이 HD’가 지금까지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 작품을 주로 스트리밍 했다면 이 플랫폼은 전 세계의 공연 영상을 선보일 계획이다. 최근 한국 창작뮤지컬 ‘엑스칼리버’가 공개되기도 했다.
네이버 통한 영상 유료화 논의 중
한국에서는 서울예술단을 중심으로 7개 국립 예술단체가 최근 공연 영상 유료화 서비스를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아직까진 수익 모델 개발보다는 새로운 시장 확장의 개념이 크다. 우선 공연 영상을 모으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네이버TV가 가장 유력한 플랫폼으로 꼽힌다. 네이버가 공연 영상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공익적 측면에서 동참 의지를 표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편집한 영상을 업로드하는 네이버TV와 실시간 스트리밍 플랫폼인 V앱을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TV에서도 특정 조건에 따라 라이브 기능이 부여되지만 주로 사용되진 않는다. 이에 비해 V앱은 팬덤을 보유한 K팝 아이돌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스트리밍 전문 플랫폼이다. 공연단체가 V앱의 유료결제 시스템을 활용하기엔 관객 동원력 면에서 역부족이다. 서울예술단 관계자는 “시스템 개발이 선결 과제”라며 “온라인 공연에 맞는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스템 개선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수수료다. V앱에서 유료결제를 하면 수익금의 30%는 네이버에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에서 채널 수수료, 결제 수수료 등을 내야한다. 결국 전체 금액 중 30~40%만 콘텐츠 제공자에게 돌아간다. 한 번의 공연으로 수십억의 수익 창출이 용이한 한류 아이돌그룹이 아닌 이상 높은 수수료가 공연계엔 큰 타격이 된다. 수수료를 고려해 입장권 비용을 높게 책정하기도 어렵다. 또 온라인 공연 시장이 갑자기 확대되다 보니 유료화에 거부감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국립단체들은 창작자 지원을 위한 네이버TV의 후원 기능을 업그레이드한다면 수수료를 대폭 낮출 수 있다고 본다. 지금처럼 공연중 혹은 종료 후 후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리 후원한 후 온라인 티켓을 구매해야만 영상을 보게 하는 방식이다. 서울예술단은 “결제 시스템을 정비해 수수료 문제를 해결해야 다음 과제인 저작권 문제와 수익 창출 시스템 구축을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에서 유료 플랫폼 구축해야
코로나19 여파에서 너도나도 공연 영상을 만들면서 통합 플랫폼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 상황이다. 그동안 네이버와 유튜브를 통해 공연 영상이 스트리밍 됐는데, 이들 영상을 추후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유료 스트리밍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민간에서 이런 플랫폼을 다루기 어려운 만큼 공공이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국내에서 다양한 공연 영상을 모아놓은 곳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이다. 소장하고 있는 공연 영상을 무료로 볼 수 있지만 기록원을 직접 방문해 DVD를 신청한 뒤 그곳에서 봐야 한다.
기록원은 현재 유료 스트리밍 플랫폼 대중화를 위한 첫 단계로 DVD에 수록된 영상을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 홈페이지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다만 저작권 문제 등 수익 배분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기록원을 직접 방문해야만 한다. 접근성이 낮긴 하지만 DVD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영상을 웹으로 옮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디지털 유료 플랫폼 구축을 위한 선행과정인 셈이다.
기록원 관계자는 “DVD 속 영상을 홈페이지로 옮기는 작업을 내년 초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향후 집에서 간편하게 유료로 스트리밍 할 수 있도록 저작권 문제, 시스템 개발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지 강경루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