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나 유행하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아시아로 본격 유입된 것은 2018년 8월로 파악된다. 중국에서 첫 확진 사례가 나오더니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했다. 치사율 100%에 백신·치료제도 없어서 ‘걸리면 끝장’이라는 인식이 각국 방역 당국에 팽배했지만 확산을 막지는 못했다. 베트남과 몽골, 캄보디아, 라오스를 거쳐 북한까지 넘어왔다. 결국 한국도 지난해 9월 16일 ASF 발병국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 파주시 소재 번식용 돼지농장에서 첫 사례가 나온 뒤 추가 확진 사례가 속출했다. 연결 고리가 명확했다면 차단 방역이 보다 쉬웠겠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7차 확진 사례인 인천 강화군 석모도 돼지농장처럼 역학적 연결고리가 없는 사례가 확인됐다. 이 와중에 비무장지대(DMZ)에서 감염된 야생 멧돼지가 나온 점도 위기감을 더했다. 전방위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됐다.
이에 방역 당국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전례가 없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방법을 들고 나왔다. 발병 농장과 역학적으로 상관관계가 없는 125개 농장의 6만5557마리를 정부에서 모두 사들였다. 예방적 살처분 조치한 38만963마리를 포함해 남방 한계선 10㎞ 이내에 있는 사육돼지를 모두 없앴다. 해당 지역을 ‘진공 상태’로 만든 것이다.
비판도 나왔지만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지난해 10월 9일 14차 확진 이후 사육돼지 농장 발병은 뚝 끊겼다. 첫 발병 후 23일 만에 확산을 억제했고 8개월이 넘도록 추가 발병 사례가 나오지 않았다.
유럽 사례와 비교하면 비교불가 수준이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은 첫 ASF 발병 이후 각각 40년, 35년이 지나서야 ASF를 잡을 수 있었다. 2014년부터 확진 사례가 보고된 동유럽 국가들은 아직도 산발적 발병 사례가 나온다. 중국은 올해에만 13건의 사육돼지 농장 발병이 보고됐다.
살처분 이후 각종 조치를 지속적으로 시행한 점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농식품부는 발병 이후 ASF 전파 우려가 있는 축산 차량의 이동을 극단적으로 제한했다. 야생 멧돼지의 적극적인 포획 조치도 가동했다.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DMZ 일대의 항공 방제나 사육돼지 농장의 잔반 급여 금지 등의 전방위 방역 작업도 펼치고 있다.
신속한 방역은 두 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일단 돼지고기 가격 안정이다. 중국의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전년 동월 대비 배나 뛰어올랐지만 한국은 안정세를 보였다. ASF 피해를 본 축산농가에 지급해야 할 예산도 줄일 수 있었다.
러시아의 경우 2007~2017년 2조~2조4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들어갔지만 한국은 721억원의 보상금으로 마무리했다. 박병홍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30일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며 “덕분에 ASF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는데 주효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K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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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