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욥 4:7) 고난 중에 있는 욥을 향하여 그의 친구 엘리바스가 내뱉은 말이다. 이렇게 타인의 고통에 대해 한마디 거들고자 하는 유혹에 신앙인들이 넘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이해와 경험의 한계를 잊어버리고, 쉽게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엘리바스도 욥을 향한 자신의 신앙적 분석과 충고가 옳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말이 옳지 못했음을 책망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지각을 초월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지나오면서, 이 재난이 특정한 나라 혹은 특정한 사람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식으로 분석해 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 때가 있었다. 그런 말을 자꾸 듣다 보니 ‘정말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그러나 여러 교회가 어려움당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이르러서야, 이 재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쉽게 추론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것은 하나님 앞과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의 옳은 태도가 아니었다.
영국 성공회 신학자 톰 라이트 교수는 그의 저서 ‘하나님과 팬데믹’에서 코로나19에 대해 신앙인들과 교회가 할 질문은 ‘왜’가 아니라 ‘무엇’이라고 말한다. ‘왜’ 이런 대재앙이 발생하고 있는지 섣불리 하나님의 뜻을 추론할 것이 아니라, 이 재난 앞에서 교회와 신앙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난에 대해서 우리 안에 즉시로 떠오르는 반응들을 피하는 대신, 애통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새로운 시각을 얻을 것이 요청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라이트 교수는 사도행전 11장에 등장하는 안디옥 교회를 중요한 예로 제시한다. 로마제국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에 천하에 큰 흉년이 닥치자 안디옥 교회는 유대에 있는 형제들을 돕기 위해 힘을 다해 부조를 준비하여 전달한다. 그 기근은 분명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재난의 원인을 분석하여 누군가를 심판대 위에 올려놓는 대신, 교회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했다. 이것은 비단 안디옥 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속에 펼쳐진 재앙의 시기마다 교회가 감당해 왔던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 전 세계적인 재난과 고통을 마주하고 있는 교회에도 동일한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우연이란 없으며,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그 선하신 뜻에 따라 일어남을 믿고 고백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과 하나님의 숨은 의도를 추론하려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오히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웃과 공공의 재난 앞에서 교회와 성도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무엇’을 행하다 보면 진정한 ‘왜’를 만나게 된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마땅히 할 일을 행할 때, 예기치 못했던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큰 그림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인과론(因果論)을 넘어선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은 추론을 통해 발견되지 않고 사랑의 수고 속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지금은 분석하고 말하기보다, 이 어려운 상황 속에 고통당하는 분들을 위해 교회가 마땅히 할 일을 해야 할 때다. 이미 많은 교회가 그러한 일들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잘 감당하고 있다. 그러한 헌신과 섬김이 이 땅에 더욱 넘쳐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온 세상에 나타나길 기대하며 소망한다.
(삼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