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뻣뻣 ‘경직증’, 약물·보톡스 주사·수술로 푼다

입력 2020-07-06 21:49 수정 2020-07-06 22:04
뇌졸중·뇌성마비 등 뇌 손상과 척수 손상 따른 후유증 겪어
뇌졸중 환자 20∼40% 경직 겪어 심하면 옷입기·식사도 어려워
보톡스 주사, 펌프이식 수술 효과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재활의학과 임성훈(오른쪽 세 번째) 교수가 신경외과 조철범(오른쪽 두 번째), 재활의학과 홍보영 교수와 함께 경직 클리닉을 찾은 환자에게 현재 상태를 설명하며 치료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김모(65)씨는 얼마 전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응급실에서 급히 막힌 뇌혈관을 뚫어 목숨은 건졌지만 두 달 후 팔과 다리가 심하게 경직되는 후유증이 따라왔다. 팔에 통증이 느껴지고 걸을 때 다리가 안으로 꼬여 자주 넘어졌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생각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뜻밖에도 미용 주사로 알려진 보톡스 치료를 받고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몇 차례 주사를 맞은 뒤 팔이 펴지고 보행이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신경계 질환인 ‘유전성 대마비’를 앓는 신모(57)씨는 걸을 때 지팡이 두 개에 의지해야 한다. 이마저도 자꾸 다리가 꼬여 보행이 쉽지 않다. 신씨의 경우 경직을 풀기 위해 여러 약물치료를 시도했으나 듣지 않았다. 약물 용량을 최대로 투여해도 효과가 없었다. 최후 수단으로 ‘바클로펜’이라는 근육 완화 약물을 경직 부위에 조금씩 뿜어주는 펌프를 배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현재 신씨는 지팡이 하나로도 걸을 수 있게 됐다.

경직은 근육의 긴장도가 높아지면서 몸이 뻣뻣해지는 증상이다. 대개 뇌졸중이나 뇌성마비 등 뇌자체에 손상을 입거나 뇌 척수를 다치는 등 중추신경계 손상에 따른 후유증으로 겪는다. 까치발이나 뻗정다리로 걷고 팔에 힘을 주지 않아도 올라간 상태가 되는 모습 등이 그 예다. 뇌졸중 환자의 20~40%가 경직을 겪는 것으로 추정된다. 뇌졸중 발생 후 평균 34일, 보통은 2개월 안에 경직이 따른다.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경직 클리닉 임성훈(재활의학과) 교수는 6일 “뇌졸중 후 적극적인 급성기 치료로 경직을 일부 완화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면서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뇌졸중 생존율이 크게 향상되면서 후유증인 경직 치료 요구도도 높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소아 뇌성마비도 경직을 동반하는 대표 질환인데, 원인인 미숙아 치료율이 높아져 치료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교통사고나 외상은 물론 암의 뼈 전이로 인한 척수 손상 후유증으로 경직 치료를 받는 사례 또한 증가하고 있다.

경직은 정도가 심할수록 옷입기, 식사하기 같은 일상생활 동작을 수행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시간이 지나면 근력 약화, 관절변형 등의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만큼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가 중요하다.

다만 경직이 항상 나쁜 측면 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근력이 아주 약한 환자의 경우 근육 긴장도가 높아지는 것을 이용해 서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고 약한 힘을 보완해서 보행을 도울 수 있다. 또 근육의 위축을 막고 골다공증이나 심장혈전증 등을 방지해 어떤 측면에서는 환자의 기능 및 합병증 예방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경직의 치료는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 상의해 경직이 환자 생활에 도움을 주는지 혹은 방해가 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치료의 범위나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경직 치료는 일반적으로 약물과 보톡스 주사를 우선 시행하다가 치료 반응이 없는 경우 바클로펜 펌프 이식이나 신경차단 같은 수술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환자 개인의 상태와 치료 반응 여부에 따라 세 가지 방법 중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해당 치료를 담당하는 재활의학과와 신경외과의 밀도있는 협진과 원활한 소통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성빈센트병원이 2018년 개설한 경직 클리닉은 모범이 될 만하다.

조철범(경직 수술), 임성훈(뇌졸중 경직), 홍보영(뇌성마비 및 소아질환 경직), 김준성(척수손상 경직) 교수 등 4명의 전문 의료진이 각 분야별로 포진하고 있다.

보톡스 주사의 경우 주름 개선 등 미용성형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지만 최근 이처럼 경직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걸로 밝혀져 점차 영역을 넓히고 있다.

보툴리늄 독소를 근육에 주입해 신경과 근육 접합부를 차단함으로써 근 긴장도를 떨어뜨리고 굳은 몸을 풀어주는 것이다. 3~4개월 정도 효과가 지속되고 큰 부작용은 없다. 다만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환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보톡스 주사에 보험혜택을 받는 경우는 뇌졸중이 발생한 지 3년 이내 심한 경직이 있는 성인 환자의 팔과 소아 뇌성마비 환자의 종아리에 한정된다. 소아의 경우 혈관기형 등으로도 뇌졸중이 올 수 있는데, 그로 인한 경직 치료에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뇌종양이나 척수 손상 시에도 마찬가지다.

보험이 적용돼도 환자 본인부담은 한 번 주사에 30만~50만원이나 된다. 비보험으로 받을 경우엔 100만원에 달한다. 임 교수는 “소아 뇌성마비의 경우 정부에서 팔과 허벅지로 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은 소식이 없다”면서 “해외에선 소아나 성인 혹은 부위에 상관없이 대부분 보험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성빈센트병원은 경직 치료에 바클로펜 펌프 이식술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이는 바클로펜 약물을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펌프 장치를 몸 속에 심어 중증 경직 증상을 완화하는 방법이다. 중추신경계를 싸고 있는 경막(수막강)에 가느다란 관(카테터)을 펌프와 연결해 소량의 약물을 주기적으로 경직 부위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다. 약물은 4~6개월에 한 번씩 외래를 방문해 간단히 충전할 수 있다.

조철범(신경외과) 교수는 “바클로펜 약물을 경구(입으로) 복용하는 환자 중에 약이 듣지 않아 약 사용량을 늘릴 경우, 약물에 따른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면서 “바클로펜 펌프는 이런 약물의 100분의 1 정도 주입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고 약을 적게 쓰기 때문에 전신 부작용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어린이에게는 이 수술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성인의 경우에도 수술 전 바클로펜 약물을 시험적으로 주입해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를 보여야 이식 수술 대상이 된다. 조 교수는 “바클로펜 펌프 수술은 과거 1000만원 넘는 큰 돈이 들어 환자들에게 시술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2018년 9월부터 건강보험(본인부담률 20%)이 적용돼 300만원 정도로 혜택을 볼 수 있다. 환자들의 선택이 계속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