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발전 자회사인 한국남부발전이 자사 책임으로 지연된 발전시설 내부 공사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청업체와 맺은 계약서에 공사대금 문제와 관련한 분쟁 시 중재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등 불공정 계약을 체결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2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남부발전 영월발전본부는 지난해 6월 강원도 영월복합화력발전소 발전설비 내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설치하는 공사를 A사를 비롯한 하청업체 몇 곳에 맡겼다. 영월발전소는 LNG(액화천연가스)를 연료원으로 하는데,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질소산화물(NOx) 등 오염물질이 발생한다. 정부의 강화된 오염물질 규제 방침에 따라 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발전설비 내에 촉매를 설치하는 공사였다. 마감 기한은 지난해 12월 30일이었다.
그러나 공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발전사 내부 시설 공사를 의뢰할 때는 상급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남부발전 측이 사전에 받지 않는 바람에 열흘 넘도록 공사가 진행되지 못했다. 인허가 이후 기초공사 과정에서도 장애물이 나오면서 공사가 3주 이상 지연됐다. 산업부 인허가 지연에 대해서는 남부발전 측도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기초공사와 관련해서는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 하청업체 측은 적절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던 남부발전 책임을 주장하고 있고, 남부발전 측은 새로운 공법을 찾지 않은 하청업체 책임이 크다는 입장이다.
결국 공사는 당초 계약보다 3주가 지연된 1월 20일에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남부발전은 지체상금(공사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2800만원 부과, 지급키로 한 계약금에서 깎았다. 하청업체 측은 공사 지연으로 인한 추가 인건비 등이 발생했는데 발전사가 자사 책임은 모른 체하고 영세 기업들의 공사대금을 깎았다고 호소한다.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사에서는 통상 공사대금 등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면 법무부 산하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중재를 거친다는 조항이 표준계약서에 담겨 있지만, 남부발전의 계약서에는 그 조항이 삭제됐다.
남부발전 관계자는 “많은 하청업체들이 공사 종료 이후 갖은 명목으로 중재를 신청해 공사비를 추가로 받아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청업체들의 지나친 분쟁 조정 신청 때문에 많은 직원이 고충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청업체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소송은 비용, 시간 등 여러 측면에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중재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라며 “중재 조항을 없앤 건 하청업체의 정당한 권익 보호 장치 하나를 제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부발전 측은 “하청업체들도 계약서 작성 전 중재 조항을 없애고 필요하면 바로 소송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갑’인 발전사가 중재 조항을 없앤 계약서를 들이밀면 ‘을’의 입장에서 이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는 게 하청업체의 하소연이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