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공개(IPO) 역사를 새로 쓴 SK바이오팜의 공모주 청약 시기에 국내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이 10조원이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CMA는 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 등 금융상품을 살 수 있는 증권 계좌로, 은행 통장처럼 돈을 넣어두고 수시로 입출금할 수 있다. SK바이오팜 신주를 청약하기 위해 증거금을 납입하려는 투자자들이 CMA에서 돈을 인출하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하루아침에 이동했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2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4일 증권사 CMA 잔액은 전날 56조9936억원에서 46조8517억원으로 10조1419억원 줄었다. 연초(51조8000억원) 이후 CMA 잔액 규모가 40조원대로 떨어진 건 이날이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코스피지수가 1400선까지 주저앉은 3월 19일에도 51조원 규모를 유지했었다. 그런데 불과 하루 만에 전체 잔액의 18%에 달하는 거액이 빠져나간 것이다.
CMA에서 사라진 10조원이 향한 곳은 SK바이오팜 청약으로 풀이된다. SK바이오팜은 지난 23~24일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을 실시했다. 이틀간 총 31조원이 몰리며 2014년 제일모직 상장 당시 기록(30조원)을 경신했다. 특히 마지막 날 증거금으로 총 25조원이 쏟아졌는데, 이 가운데 상당 금액이 CMA 잔액 감소분(10조원)에서 나온 자금이라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주 배정을 위해 단기간 납입하는 증거금을 내려고 마이너스통장까지 모두 끌어다 쓴 개인투자자가 많았다”며 “CMA에 보관된 돈까지 SK바이오팜 청약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식 배당 후 남은 증거금은 2~3일 후 투자자에게 반환된다.
최근 SK바이오팜과 같은 ‘대어급’ 기업이 속속 나타나면서 공모주 시장엔 대규모 자금이 몰리고 있다. 지난 25~26일 진행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장비 개발 업체 신도기연의 공모주 청약에는 1조9864억원의 증거금이 납입돼 955.0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실시된 바이오 기업 위더스제약의 공모주 청약에도 2조7500억원이 쏟아지며 최종 경쟁률이 1033.41대 1에 달했다. 최근 증시 상승세가 주춤해지자 신주 발행 시장으로 투자 자금이 쏠리는 ‘머니 무브’가 일어나는 것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