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 선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여당에서 대북제재 완화와 한·미워킹그룹 무력화, 종전선언 추진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북측이 ‘후속 조치에 따라 향후 대남 전략이 바뀔 수도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을 넘긴 데 따른 것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일 MBC라디오에서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 위원들을 만나 인도적 지원 등에 대해 제재 일부 완화를 강력히 요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북제재 사안을 논의하는 한·미워킹그룹에 대해선 “대한민국의 자주적인 통일정책을 워킹그룹에 의존해 미국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대한민국의 한반도 운전자 역할을 더 강화해 당사국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현 민주평와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정 수석부의장은 강연에서 “한·미워킹그룹 틀 밖에서 족쇄를 풀고 핵 문제를 풀기 위해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특보는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유엔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고 북한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미국이 반대한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게 아니다”며 식료품과 의약품 지원,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한 대북 개별관광을 들었다.
통일부와 외교부 등 남북 관계 주무 부처들도 서둘러 움직이고 있다. 통일부는 “김 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 보류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데 힘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통일부는 대북 개별관광에 필요한 사전 준비 작업을 90% 이상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되는 대로 관련 논의를 북한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한반도에서의 긴장 고조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C) 주최 한·미 전략포럼에서 “한국인들은 이제는 정전체제를 끝내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한국이 스스로의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 데 있어 주인공이 될 때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관건은 미국의 호응 여부다. 미국은 대북제재 문제와 종전선언 등을 북·미 양자 간 비핵화 협상의 중요한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미국을 설득하지 않고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할 경우 우리 기업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탓에 미국과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북한은 6·25전쟁 70주년 당일 1만3000자가 넘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미국이 가해오는 지속적인 핵 위협 제압을 위한 우리 힘을 계속 키울 것”이라며 “우리가 선택한 길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선전쟁(6·25전쟁)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필연적인 산물”이라며 미국을 비난했다.
손재호 신재희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