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도 어려운데 뭔 결혼?” 팍팍한 청춘, 저출산 불렀다

입력 2020-06-25 00:06
보건복지부 주최로 24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에서 열린 ‘저출산 대응을 위한 인문·사회 포럼’ 두 번째 토론회에서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 교수가 저출산 문제를 바라보는 청년의 인식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최 교수는 저출산 원인으로 청년들이 출산과 육아를 포기하게 만드는 경쟁적 환경을 지목했다. 보건복지부 제공

합계출산율이 1명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 무한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청년의 삶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청년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는 ‘리스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 청년이 늘어나는 것 또한 인구 재생산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청년에게 출산은 ‘리스크’일 뿐

보건복지부가 24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에서 개최한 ‘저출산 대응을 위한 인문·사회 포럼’ 두 번째 토론회에서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경쟁 메커니즘이 도입된 사회에서 자라난 청년세대의 인식을 분석했다. 희소한 자원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청년에게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는 일종의 ‘필드’(경기장)가 돼버렸고, 이런 환경에서 청년이 출산과 육아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최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성공이 최고의 가치가 됐고 청년들은 자신을 하나의 기업으로 설정하기 시작했다”며 “부실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는 것처럼 청년에게 구조조정은 자기계발이 됐다”고 했다.

이런 자기계발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계급화가 이뤄진 노동시장에서 청년은 계급 향상이라는 성공을 추구하기 위해 자기계발에 뛰어든다. 자기계발을 한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상당수 청년은 계급이 떨어지는 것만이라도 막으려는 생존을 추구한다.

이런 사회에 놓인 청년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는 성공과 생존을 가로막는 ‘리스크’일 뿐이다. 최 교수는 “남성이 돈을 벌고 여성이 육아를 하는 가부장적 핵가족 제도가 자리 잡은 시대에서 결혼과 출산, 육아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모든 관계를 단기에 맺고 끝내는 문화가 된 현 사회에서 장기에 걸친 출산, 육아 등의 가족 제도는 힘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비구직 니트족의 증가가 저출산 요인

경쟁사회에서 성공 또는 생존하지 못한 사람은 ‘니트(NEET)족’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구직활동조차 하지 않는 ‘비구직 니트족’이 경기 변동과 상관 없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남 연구위원은 15~34세 청년 니트 현황을 조사한 결과 올해 비구직 니트가 지난해보다 15만7000명 늘어난 127만3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해당 연령층 전체 인구(1223만8000명)의 10%를 넘는 첫 해가 되는 것이라고 남 연구위원은 전했다. 올해는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그는 추측했다.

2000년에 비구직 니트를 경험한 사람을 추적 조사해 이들의 7~9년 후 취업률을 살펴보면 2007년 58.6%, 2008년 60.9%, 2009년 62.4%를 각각 기록했다. 이는 비구직 니트를 경험하지 않은 청년의 취업률인 64%(2007년), 67.7%(2008년), 70.1%(2009년)보다 낮은 수치다. 2000년과 2001년 연속으로 비구직 니트를 경험하면 같은 기간 취업률은 47.1%, 51.5%, 46.1%로 더 떨어진다.

비구직 니트를 경험한 뒤 취업을 해도 임금에서 격차가 벌어졌다. 2000년에 비구직 니트를 경험하지 않은 청년의 2006년 월평균 임금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비구직 니트 경험자의 임금은 83.9에 그쳤다. 2000, 2001년 2년 연속 비구직 니트를 경험한 사람의 임금은 77.7까지 낮아진다. 남 연구위원은 “취업을 해도 임금 수준(생산성)이 떨어지는 건 상당한 문제”라고 했다.

비구직 니트 경험 유무는 배우자 유무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 연구위원은 “청년기 비구직 니트 경험자의 10년 후 유배우자 비율은 비경험자의 유배우자 비율보다 낮다”며 “니트 경험이 출산율 저하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유추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니트족도 역동성… 정부가 개입해야

이날 발표에 대해 이선미 서울여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1980, 90년대 (상당수 직장인들이 그렇게 했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밤낮없이 일하는 게 정상이 아니었다”며 “(마찬가지로)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삶 자체가 지금의 청년에게 반드시 정상적인 삶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노동시장 참여에 대한 청년들이 갖는 새로운 생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최윤경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비구직 니트 경험자가 비경험자보다 임금과 취업률이 낮았지만 이들이 일정 수준의 취업률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그들 안에도 역동성이 있다는 반증이고 이 역동성을 끌어낼 여지가 있다고 본다”며 “정부와 우리 사회가 반드시 개입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올해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발표를 앞두고 인구와 미래사회, 청년, 여성과 가족, 발전주의. 코로나19 이후의 삶이라는 주제로 총 5회에 걸쳐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저출산에 대한 2030세대의 인식, 사회문화적 변화 등에 대해 보다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며 “코로나19로 저출산 추세가 심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통해 중장기적인 시계를 갖는 정책 대안을 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