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스톡홀름의 지하철역은 ‘세상에서 가장 긴 미술관’으로 통한다. 이유는 지하철 역사(驛舍)를 하나의 예술 공간처럼 꾸며놓아서다. 역사에 있는 한 벽화를 예로 들자면, 1950년부터 시작된 벽화 작업에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 공학자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까지 참여했다고 한다. 거대한 청색의 넝쿨 줄기가 백색 벽을 타고 뻗어 나가는 그림인데, 이 벽화는 현재 스톡홀름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역사학자 백승종은 스톡홀름을 다룬 챕터 도입부에 이 벽화가 그려지기까지의 협동 과정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스웨덴 역사에서 반짝였던 시기인 바이킹 시대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협동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스웨덴이 지구촌에서 첫손에 꼽히는 복지국가로 자리매김한 원인도 거슬러 올라가면 바이킹 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스웨덴의 핵심 가치는 평등인데, 이 역시 바이킹의 유산이라는 거다.
‘도시로 보는 유럽사’에는 이처럼 유럽의 이름난 도시를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본 내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저자는 30년간 틈틈이 유럽 여러 도시를 둘러봤는데, 여행 일정이 잡히면 몇 달 전부터 여행지의 역사를 자세히 공부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열흘 이상 한가로이 머물렀다고 한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 책은 “역사가의 수학 여행기”인 셈이다.
아테네 로마 스톡홀름 베니스 프라하 런던 모스크바…. 책에는 이들 도시를 포함해 총 18개 도시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다. 저자는 각 도시와 관련된 역사를 풀어내면서 “그 도시가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어느 한 시기”에 집중한다. 이런 식으로 18개 도시를 굴비 엮듯이 묶어내니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책 제목을 ‘도시로 보는 유럽사’라고 명명한 까닭을 알게 된다.
저자는 프랑스 파리가 인류사에서 세상의 빛일 때가 많았다면서 이곳을 “빛의 도시”라고 치켜세운다(이런 표현은 루이 14세 때부터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별명이 지금도 유효한지는 의문이라고, 하지만 “희망의 씨앗은 죽지 않았다”고, 왜냐면 기후위기 극복 등을 위해 파리만큼 노력하는 도시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여정은 ‘미래형 도시’로 손꼽히는 독일의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를 살피는 것으로 끝난다. ‘도시로 보는 유럽사’는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올여름 해외여행을 포기한 이들에게 미력이나마 여행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신간일 듯하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