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쯤 전에 해외 원정 암 치료의 민낯을 본보 지면(2019년 4월 3일자 1·2면 ‘1억 들여 떠난 獨 암치료…작년 10명은 돌아오지 못했다’)을 통해 고발한 바 있다. 중증의 말기 암환자들이 고가의 중입자 치료를 받으러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가 현지에서 숨지거나 엉뚱한 치료를 받는 사례가 다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국내에 들어와 있지 않은 중입자 암 치료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환자와 가족들이 접하기란 쉽지 않다. 암 치료 병원이나 의사들이 마땅히 알려줘야 하지만 ‘3분 진료’가 여전한 국내 의료 현실에선 요원한 일이다.
결국 인터넷 암환자 커뮤니티에 의지하게 되고 그런 공간에서 암암리에 접근한 브로커의 달콤한 속삭임에 쉽게 넘어간다. 담당 의사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원정 치료를 결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유독 우리나라 암환자들은 의사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이다. 그 근간에는 의사에 대한 불신, 소통 부재 문제가 깔려 있다. 보건 당국이나 의료계가 책임을 방기한 측면이 크다. 본보 보도 후 보건복지부는 유사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국외 암 치료 권고문을 만들어 보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는 사이 ‘불확실한 희망’을 안고 해외 원정 치료에 나서는 암환자들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대한암학회 등 국내 25개 암 관련 학회와 국립암센터가 ‘암 치료의 올바른 선택’ 캠페인을 조만간 시작한다는 것이다. 꼭 필요하지 않거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행위를 줄이고 진정으로 필요한 암 치료에 사회적 비용이 쓰일 수 있도록 대국민 홍보와 의료계 선도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우선 환자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오남용되는 암 치료 행위 5가지(해외원정 중입자 치료, 온열 치료, 근접 방사선 치료, 암성통증 치료, 호스피스 이용)를 주제로 선정해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적극 알리겠다는 것이다.
중입자 치료를 예로 들면 여러 장기로 퍼진 전이암 환자에겐 불필요하고 자칫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 알선 업체를 통해 고액 해외 치료에 나서지 마라, 방사선종양 전문의가 포함된 다학제암위원회와 먼저 상의하라고 권고한다. 또 온열 치료의 경우 수술 불가능한 고형암 환자에게만 권고되며 단독요법이 아닌 방사선이나 항암치료와 병용할 때 의학적 근거를 갖는다. 근래 요양병원을 중심으로 온열치료가 무분별하게 이뤄져 암환자와 보험사 간 분쟁이 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주제여서 시의적절해 보인다.
이번 ‘암 치료의 올바른 선택’ 캠페인은 2012년 미국 의료계에서 시작돼 유럽 지역으로 확산된 ‘현명한 선택(choosing wisely)’ 운동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미국 내과의사회(ABIM)재단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캠페인은 불필요한 검사와 처치를 줄여 과잉 진단, 낭비성 의료를 막고자 하는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 의사들 스스로 적정 진료에 앞장서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순 두통, 허리 통증에는 CT나 MRI를 찍지 말자’ ‘소아 단순 감기에 항생제를 투여하지 말자’는 식이다. 각 진료과 학회별로 5~10개씩 리스트를 만들어 소속 의사와 국민에게 보급했다. 치료행위 선택 시 환자와 의사 모두 ‘현명하게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현재 70개 이상의 전문학회가 참여하고 있으며 400개 넘는 리스트가 제시됐다. 미국 최대 의료 소비자단체도 동참하고 있다.
국내 암 관련 학회들이 한국판 ‘현명한 선택’ 캠페인의 첫발을 뗐다는 의미가 크다. 다른 질병 학회들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때마침 원로 의료인 학술단체인 의학한림원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현명한 선택’ 실천 리스트 개발에 들어갔다. 한림원은 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을 벌였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흐지부지된 적 있다.
캠페인 성공의 열쇠는 결국 의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국민 호응에 달려 있다. 이번만큼은 결실을 거둘 수 있기 바란다. 이는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를 쌓는 길이기도 하다.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