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을 위해 포정처럼 칼을 쓸 거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큰 칼을 마구 휘두르고 있으니, 참….”
더불어민주당 소속 법제사법위 의원이 23일 윤석열(사진) 검찰총장의 최근 행보를 평가하며 내놓은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 양나라 백정 포정이 소를 바를 때 칼끝이 뼈에 닿지 않도록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는 데서 유래한 ‘포정해우’처럼 검찰 개혁에 앞장서주길 기대했건만 오히려 갈수록 윤 총장이 검찰 개혁을 막아서는 모양새가 됐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공정사회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법무부와 검찰에 협력을 당부하면서 여권 일각에서 제기된 윤 총장 사퇴론은 가라앉는 분위기다. 하지만 윤 총장을 바라보는 여당의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 없다. 최근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관련 위증교사 의혹 진정과 ‘검·언 유착’ 사건 등을 검찰이 처리하는 과정에서 윤 총장의 처신이 부적절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윤 총장이 검찰 기득권 지키기를 넘어 자기 측근 감싸기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의 또 다른 법사위원은 “자기 식구를 봐주려고 문제를 계속 일으키는데, 이건 윤 총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검찰 조직 전체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윤석열호 검찰의 수사 행태에 대한 불만도 적잖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겪으면서 ‘윤 총장은 우리 편이 아니다’는 인식이 당에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두관 의원은 “자신의 장모 혐의는 물론 야당의 명백한 비리 사건은 수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법꾸라지를 넘어 법뱀장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야 할 수준”이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이 같은 여당의 행태를 두고 예정된 검찰 인사를 앞두고 여당이 윤 총장의 힘을 빼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연일 윤 총장과 각을 세우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미래통합당 등 보수 진영에서는 이를 여당의 ‘윤석열 흔들기’로 몰아가며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다만 여당으로선 윤 총장 힘을 빼겠다는 의견은 있지만 사퇴까지 유도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민주당 지도부는 “나라면 사퇴하겠다”는 설훈 최고위원 발언, ‘조국 키즈’로 불리는 초선 의원들의 윤 총장 비판으로 불거진 ‘사퇴론’ 진화에 나섰다. 당 지도부의 한 인사는 “조 전 장관 사태를 겪으며 사법개혁을 명분으로 국회에 입성한 김남국 김용민 의원 등 일부의 지지층 의식 행보일 뿐 지도부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일축했다.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에 부담을 준다는 점에서 여당 의원의 처신으로 적절치 않을 뿐더러 사법 개혁 추진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에선 4·15 총선에서 177석을 얻으며 사법 개혁을 지지하는 민심을 확인한 마당에 윤 총장과 싸울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도 읽힌다. 법사위의 한 재선 의원은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면 윤 총장은 이를 집행하면 되는 상황”이라며 “오히려 윤 총장이 중간에 나가버리면 판이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련 후속 법안 통과와 공수처장 후보 추천 절차 등이 남은 상황에서 윤 총장 이슈를 키워 야당이 발목잡기할 빌미를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검찰과 법원 등 사법부의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개혁 동력을 키워나갈 방침이다. 이날 당에선 불법 여론조작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특검 수사보고서 허위 작성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원내 선임부대표인 전재수 의원이 원내대책회의에서 “재판 증인인 식당 주인 등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고 누구도 설명하지 않는 사실이 수사보고서에 담겨 있었다”며 해명을 촉구했다. 송갑석 대변인도 “수사보고서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언이 나온 것은 허위 작성 의심을 품기에 충분하다”고 논평했다.
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한 전 총리 사건 수사와 재판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법원행정처 등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한 전 총리 사건 당시 검찰의 수사 방식을 법원이 문제 삼지 않은 점을 비판했다.
판사 출신 박범계 의원은 “한 전 총리 재판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며 “한만호씨가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는 검찰에서의 진술 신빙성은 인정하고, 1심 재판 과정에서 (번복)한 증언은 신빙성이 없다는 2심 판단은 공판중심주의의 후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송기헌 의원은 “한 전 총리 사건을 보면서 판사들의 인권 감수성이 미약하지 않은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병철 의원도 “멀쩡한 사람(한씨)을 검찰로 불러 3㎡ 방에서 73회나 조사했다”며 “이런 걸 변호인이 판사에게 말해야만 느낄 수 있느냐. 법관은 전문성, 경륜을 가진 사람들 아니냐”고 질타했다.
김나래 이가현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