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음 달 1일 실시되는 개헌안 국민투표에 앞서 종신 집권 욕심을 드러냈다. 대통령 연임 제한을 회피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된 이번 개헌안이 통과되면 2024년 대선에 또 출마하겠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TV ‘로시야1’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재출마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헌법이 개정되면 출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푸틴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면서도 후계자 문제를 들어 자신의 5번째 대선 출마를 정당화했다. 그는 “내 경험상 아주 솔직히 말하면 이번 개헌이 없으면 2년쯤 뒤부터 여러 권력기관이 정상적이고 규칙적인 업무를 하는 대신 잠재 후계자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눈을 돌리기 시작할 것”이라며 “지금은 일을 할 때지 후계자를 찾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퇴임 후 권력기관들이 후계자를 찾느라 국정을 소홀히 할 것을 우려해 미리 자신의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설명이다.
현재 4번째 대통령직을 수행 중인 푸틴은 지난 1월 개헌 추진을 공식화했다. 3연임 금지 조항이 있는 현행 헌법대로라면 푸틴은 2024년 이후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새 개헌안에는 3연임 금지 조항은 그대로 두되 전·현직 대통령의 이전 임기를 소멸시켜 그들의 대선 출마를 사실상 가능케 했다.
푸틴이 2024년 대선에서 당선된 뒤 6년 임기 대통령직을 연임할 경우 산술적으로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 개헌이 푸틴의 종신 집권을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개헌안은 국민투표를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개헌안은 이미 러시아 의회를 통과한 상태이며, 오는 25일 사전투표를 시작으로 다음 달 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국민투표는 요식행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러시아 전국투표’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투표에서 유권자의 과반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도 투표 참여자의 과반 이상이 찬성하면 개헌안은 통과된다.
조작이 만연한 러시아 선거 풍토에 냉소적인 시민들보다 푸틴의 열혈 지지층이 투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만큼 개헌안의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다만 이번 투표가 푸틴의 재집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의미를 갖고 있어 러시아 당국은 투표율 제고에도 신경쓰고 있다. 모스크바시는 투표를 마친 이들에게 아파트와 자동차, 스마트폰 등을 경품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