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을 통해 2018년 북·미 정상회담과 한국의 개입 과정 등 뒷이야기를 쏟아낸 것에 대해 22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상당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 실장은 이 같은 입장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전달하고 적절한 조치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23일(현지시간) 출간되는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정 실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처음에 북한의 아이디어인 줄 알았다”며 “나중에야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 어젠다에서 온 것으로 의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난해 6월 30일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문 대통령의 참여를 원하지 않았었다고 책에 적었다.
책 내용이 논란이 되자 당시 볼턴 전 보좌관의 카운터파트였던 정 실장이 이례적으로 정면 반박 입장을 냈다. 정 실장은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정부 간 상호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향후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며 “미 정부가 이러한 위험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내용에 대해 “한국과 미국, 북한 정상 간 협의 내용 관련 상황은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라며 “상당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부적절한 행위는 앞으로 한·미 양국의 안보이익 강화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했다. 청와대는 해당 회고록이 대통령의 전직 참모로서 비밀준수 의무와도 배치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볼턴 전 보좌관의 주장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사실이 아닌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사실관계를 다투는 것조차 부적절하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다.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볼턴 전 보좌관이 지난해 6월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의 디테일을 알 수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 때 볼턴 전 보좌관은 몽골에 가 있어서 그 상황에 전혀 관여를 안 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볼턴 전 보좌관이 문 대통령의 비핵화 구상을 ‘조현병 환자 같은 생각’이라고 폄훼한 데 대해선 “본인이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맞받아쳤다.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시절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 등에 관여했던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볼턴 전 보좌관에 대해 “당신이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착각과 오만에서 벗어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실무 책임자로서 팩트에 근거해서 말한다”며 “볼턴 주장은 사실관계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래통합당을 향해선 “이 상황이 호기인가 싶은가 보다. 한반도 평화마저 정략적 관점으로 접근해서 정부·여당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삼는 말들에 더욱 참담하다”고 했다.
▶
▶
▶
▶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