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어! 내가 마킹한 번호가 아니네”… 이상한 로또 복권 발권

입력 2020-06-23 04:01
자동·반자동 방식으로 발권된 제886차 로또 복권(왼쪽). 오른쪽은 발권 전 번호를 표기한 OMR카드.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A~E 기표란에 각각 9·39·44번을 표기했는데, 발권된 복권의 B·C·E줄(붉은선 안)을 보면 해당 번호가 1~2개 표출되지 않았다.

사업을 영위하다 은퇴 후 세종시에 거주 중인 김모(67)씨는 매주 로또 복권을 구매한다. 당첨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김씨가 생각했던 번호가 나올 수도 있다는 희망이 한 주를 사는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마주쳤다. 지난해 11월 23일 오후 7시24분에 세종시 소재 한 로또 복권 판매처에서 구매한 886회 로또 복권에서 오류로 보이는 현상을 발견했다. 당시 김씨는 1~45번까지 5줄(A~E줄)로 이뤄진 OMR카드에 줄마다 9번, 39번, 44번을 표기했다. 그리고 밑에 ‘자동선택’에도 표기를 했다. 소위 ‘반자동’이라고 불리는 방식이다. 이 경우 김씨가 표기한 3개 번호 외에 나머지 3개 번호는 무작위로 배정된다. 당연히 표기했던 번호는 나오겠지 생각했지만 김씨의 오산이었다. 막상 발행 복권을 살펴보니 3개 번호가 모두 기입된 것은 2줄에 불과했다.

OMR카드와 대조해 보니 5개 줄 중 B줄의 경우 39번과 44번만 찍혔을 뿐 9번은 찍히지 않았다. C줄과 E줄은 더욱 요상했다. 44번 외에 다른 두 번호를 아예 찾아 볼 수 없었다. 특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E줄이다. A~D줄은 그나마 정상적으로 ‘반자동’이라고 분류가 돼 있는데 E줄은 아예 ‘자동’으로 분류돼 있었다. 김씨의 의도와 달리 6개 번호가 모두 무작위로 배정됐다는 소리다.

이 상황이 이상한 이유는 현행 로또 시스템 때문이다. 번호 기입란에 컴퓨터 사인펜으로 표기를 한 이력이 있을 경우 ‘자동’ 표기가 불가능하다. 인식해야 하는 번호가 있다 보니 자동이 아니라고 보는 시스템 구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는 4000원만 결제됐어야 하지만 복권은 정상적으로 발행됐다.

오류로 보이는 이 현상에 대해 로또 판매 상황을 관리·감독하는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긋는다. 22일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로또 복권 판매액은 역대 최대인 4조3082억원에 달한다. 주당 평균 828억4900만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오류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위탁판매업체가 바뀌더라도 신규 시스템으로 교체하지 않고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 역시 그동안 쌓아 온 로또 복권의 신뢰도와 무관하지 않다.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로또 복권은 LG CNS에서 42억여원을 들여 개발한 국산 시스템을 통해 운용하고 있다.


관리·감독 과정에서도 오류 가능성을 발견한 적은 없었다는 게 복권위원회의 설명이다. 복권위원회는 매년 위탁판매업체를 대상으로 정기 감사를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전국에 7000여개인 로또 복권 판매자의 변동 사항이나 기기 변경 여부까지 들여다본다. 복권 판매 데이터를 관리하는 KT의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서 전산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없다고 못 박는다. 복권위원회 설명대로라면 ‘퍼펙트 시스템’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번호의 50% 이상 부분에 색이 칠해져야만 인식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씨의 OMR카드와 관련해 “B줄과 C줄의 경우 발행되지 않은 번호는 인식이 안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일견 타당한 설명이다. 하지만 3개 번호가 정상적으로 표기돼 발행된 D줄 사례를 보면 의문이 남는다. 김씨가 OMR카드의 D줄에 표기한 번호들을 육안으로 보면 복권위원회 설명대로 ‘50% 이상’ 표기가 잘돼 있다고 보기 힘든 정황이 있다. B, C줄과 별 차이가 없는데 D줄은 정상적으로 나온 것이다.

E줄의 경우는 아예 설명도 불가능하다. 복권위원회는 이 상황이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E줄의 경우 인식이 안 되는 게 정상이다”며 “짐작건대 로또 복권 판매자가 인식되지 않은 한 줄에 대해 ‘자동으로 돌려도 될까요’라고 설명하고 자동으로 돌렸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확인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오류 가능성을 일축하지 못한 셈이다. 김씨는 “로또 복권에서 단 한 건이라도 오류가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토로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