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의 별명은 ‘호국과 보훈의 도시’다. 그런 칠곡군은 각별히 에티오피아를 챙긴다. 군 차원의 공적 지원은 물론, 유치원생부터 어르신들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해 에티오피아를 돕는 데 나선다. 칠곡군은 지난 19일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에게 전해달라며 마스크 3만 장과 손소독제 250병을 주한에티오피아 대사관에 기탁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자치단체 예산 등 공적자금이 아닌 주민들 기부로 모은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2014년부터 7년간 이어온 칠곡군의 에티오피아 지원 사업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대륙에서는 유일하게 6·25전쟁에 참전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고마운 나라’가 최근 내전 등에 의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칠곡군이 빚을 갚기 위해 나선 것이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2014년부터 경제적 지원은 물론 새마을운동을 에티오피아에 전파하고 참전용사를 초청해 그들의 무훈을 대한민국에 알리는 일에도 적극 노력했다. 지역에서 열리는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에 에티오피아 홍보부스를 마련해 전통 문화와 참전용사의 헌신을 전파했다. 지난해 9월에는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과 ‘문화·관광·보훈 분야 MOU’를 체결해 외교적 차원의 지원방안도 모색했다.
지난 4월부터는 6037명의 참전용사 희생과 헌신의 재조명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그들을 돕기 위해 마스크 기부운동을 시작했다. ‘호국과 평화’를 정체성으로 삼는 칠곡군이기에 이처럼 헌신적인 사랑이 가능했던 것이다.
새마을운동을 전파하다
군의 지원에서 무엇보다 눈여겨볼 점은 군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였다. 칠곡군은 에티오피아 오르미아주 디겔루나 티조지역을 ‘칠곡평화마을’이라 부르고 2014년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에 칠곡평화마을을 돕기 위해 ‘평화의 동전 밭’을 마련했다.
에티오피아를 돕기 위해 축제장에서 마련한 모금함 ‘평화의 동전 밭’을 통해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알려지자 군민들은 칠곡평화마을 돕기에 본격 동참했다.
지역 유치원과 초등학생 5000여 명은 용돈을 아껴 칠곡평화마을에 도움을 손길을 내밀었고 할매·할배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차가운 왜관역 바닥에서 공연을 했다. 기초 수급자와 장애인 등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주민들도 동참한 결과, 매월 1260만원이 모이기 시작했다.
군민들의 성금은 에티오피아의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지난 7년간 에티오피아 디겔루나 티조 지역에 2개 초등학교가 신축되고 인근 15개 초등학교의 책걸상과 기자재를 모두 교체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현지 주민들의 생활환경이 확 바뀌었다. 양계 사육·농작물 관리 교육이 진행되면서 저축조합이 설립되고 식수 저장소 4기와 식수대 11기가 건설되는 등 자립 기반이 마련됐다.
새마을운동을 에티오피아에 전파하기 위해 3억원을 투입, 티그라이주에 새마을회관을 건립하고 새마을 조직 육성을 통한 주민의식 개혁, 마을안길 포장 등 환경개선, 소득증대 지원 사업도 추진했다.
외교적 차원의 지원도
칠곡군은 주한 에티오피아대사관과 외교적 차원의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문화·관광·보훈 교류 협력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군은 지난해 9월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과 ‘문화·관광·보훈 교류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을 통해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 주한 에티오피아대사관 부스를 운영하고 각종 기념일은 물론 축제, 국제교류행사 등에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또 민간 교류를 적극 지원하고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위해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각뉴 부대의 무훈을 재조명하고 참전용사 가족 지원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칠곡군은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2016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초청해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대한민국에 전파했다. 지난 1월에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위치한 한국전 참전용사회관에 동상을 건립했다.
코로나19로 참전용사들이 어려움에 처하자 백 군수는 지난 4월부터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6037명의 헌신에 ‘결초보은’(結草報恩)을 위해 6037장의 마스크를 마련하는‘6037 캠페인’을 시작했다.
SNS에 글을 올리고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지원을 위한 마스크 기부 동참을 호소했다. 사연이 알려지자 각계각층의 주민들의 동참이 이어졌다.
뇌병변 장애 1급인 장윤혁(45)씨는 휠체어를 타고 마트와 약국을 돌며 어렵게 구한 마스크 365장을 기부했다. 박덕용(86) 6.25참전유공자회 칠곡군지회장은 어버이날 자녀가 구해준 공적 마스크 30장을 에티오피아 전우를 위해 기꺼이 내 놨다.
칠곡군의 인문학마을 주민과 아파트 부녀회는 참전용사를 위해 재봉틀을 돌려 직접 면 마스크를 제작했다. 칠곡에서 시작된 캠페인의 물결은 전국에서 일기 시작하며 20일 기준으로 두 달여 만에 목표로 했던 6037장의 5배인 3만장을 넘어섰다.
백 군수는 “코로나19 사태가 안정 국면에 접어들면 짐마게터티 지역을 방문해 현지의 실태를 파악할 계획”이라며 “마스크 지원 등의 코로나19 방역사업을 계속 이어가며 참전용사와 그의 후손들을 위한 지원 사업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백선기 칠곡군수
“에티오피아 젊은이들 희생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
“70년 전 6037명의 에티오피아 젊은이들이 253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켰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는 겁니다.”
백선기 경북 칠곡군수는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6037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6037 캠페인은 6037명의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를 보내는 캠페인으로 백 군수가 직접 기획했다.
에티오피아 지원 사업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백 군수는 늘 “자립기반을 마련해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이 가능하도록 돕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이유로 백 군수는 에티오피아에 새마을운동을 전수했다. 새마을운동은 국제 사회에서 빈곤 퇴치의 실제 성공 사례와 저개발국을 위한 학습 모델로 인정받으며 세계빈곤퇴치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백 군수는 “6.25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젊은이의 고귀한 희생이 ‘새마을운동’의 씨앗이 돼 대한민국은 가난을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새마을운동을 전수해 에티오피아 젊은이의 희생에 보답하고자 노력했다. 에티오피아 티그라이주 새마을 시범마을에 새마을 조직 육성을 통한 주민의식 개혁과 새마을회관 건립 등 환경개선과 소득증대 사업을 추진하면서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백 군수는 에티오피아를 지원하면서 칠곡군도 함께 도약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칠곡군은 6.25 전쟁당시 최대의 격전지로 대한민국을 구한 호국과 평화의 도시다.
에티오피아 지원 사업은 이러한 인프라에 스토리를 입혀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군’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정립해 관광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 군수는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올곧게 세우며 이역만리에 칠곡평화마을의 현판을 내건 군민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칠곡=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