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범위가 확대되고 중증 환자가 늘면서 감염병 전문가들이 재유행에 대비한 의료체계 재정비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전염력이 높은 코로나19 장기화 상황에서 역학조사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중증 환자 사망을 막기 위한 의료 시스템 유지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는 21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기관 55곳에서 증상 발현부터 퇴원까지 4주간 임상 경과를 확인한 1309명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입·퇴원 기준 개선을 요구했다. 중증 환자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입원 기준은 고위험군 우선 입원을 원칙으로 하고, 상태 악화 가능성이 낮은 환자는 조기 퇴원시킨다는 게 골자다.
중앙임상위가 우선 입원 대상자로 본 고위험군은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중증 환자로 악화할 확률이 10% 이상인 환자다.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의 고도비만이거나 패혈증쇼크진단검사(qSOFA) 1점 이상인 경우, 당뇨·만성신질환·치매 등 기저질환자, 65세 이상 고령자가 해당한다. 반면 50세 미만 성인 중 증상 발생 후 7일 이내 호흡곤란이 없고 기저질환이 없으며 의식이 명료한 환자는 중증 악화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이 경우 자가격리나 생활치료시설 전원(轉院)을 고려할 수 있다. 중앙임상위는 “입원 기준 개선으로 최대 59.3%의 추가 병상 확보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중앙임상위는 50세 미만 성인 중 산소 치료가 필요 없는 경증 환자와 산소 치료를 했더라도 치료를 중단한 지 3일 이상 지난 환자는 퇴원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50세 미만 환자가 증상 발생 후 10일까지 경증을 보이다가 중증으로 악화된 경우는 0.2%에 불과했다.
최근의 확진자 증가세에도 정부는 현 의료체계로 수용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중앙임상위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지금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의료 시스템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방지환 중앙감염병병원운영센터장은 “수도권은 중환자 병상이 포화돼 걱정”이라며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면 치료제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심각하고 재앙적인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수도권의 사용 가능한 중환자 치료 병상은 서울 24개, 인천 10개, 경기도 4개로 빠듯하게 남아 있었다.
중증 환자가 늘고 있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이날까지 코로나19 중증·위중 환자는 34명이었다. 고령의 기저질환자들이 입소해 있던 서울 도봉구 요양시설에서는 82세 남성 확진자가 지난 17일 사망했다. 구로예스병원에서도 추가 확진자가 나오면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유행 확산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이날 0시 기준 신규 확진자 수는 전일 대비 48명 증가했다. 수도권뿐 아니라 강원도 2명, 광주 1명, 세종 1명, 충남 1명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중앙임상위는 중증 환자에게 치료를 집중할 수 있는 입·퇴원 기준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입원 치료로 증상이 호전됐다면 유전자증폭검사(RT-PCR)에서 양성 판정이 나오더라도 입원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오명돈 중앙임상위원장은 “PCR검사에서 양성인 환자 50명을 되돌려보내고 그 병상에 중환자를 받아 치료하면 결국 지역사회 감염자 500명을 치료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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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