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자 충성맹세까지… 중, 홍콩 장악 노골화 ‘국가보안법’ 초안

입력 2020-06-22 00:28
지난달 24일 홍콩에서 시위대를 검거하는 경찰. AFP연합뉴스

중국이 제정을 추진 중인 ‘홍콩 국가보안법’에 국가 분열과 정권 전복, 테러리즘 등 홍콩의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의 감시와 처벌 등을 담당하는 ‘홍콩 국가안보처’를 신설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홍콩 정부는 국가안보수호위원회를 신설해 중국 중앙정부의 감독을 받도록 했다. 본토의 홍콩 장악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21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최고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18~20일 인민대회당에서 제19차 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이 담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초안을 심의했다. 이번 회의에서 법 통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인대 상무위가 오는 28∼30일 20차 회의를 열기로 함에 따라 이르면 이달 말 홍콩보안법이 처리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공개된 홍콩보안법 초안에는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 국가안보처에 해당하는 홍콩 주재 ‘국가안보공서(駐港國家安全公署)’를 설치토록 했다. 국가안보공서는 홍콩의 안보 정세를 분석해 안보전략과 정책 수립에 의견을 제시하고, 홍콩의 국가안보 관련 임무를 감독·지도·조정·지지하는 역할을 맡도록 할 방침이다. 국가안보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관련 범죄 사건을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도 국가안보공서 직무에 포함된다. 국가안보공서가 홍콩 국가안보 업무의 지도·감독 등 측면 지원 뿐아니라 직접 범죄 정보 수집 및 사건 처리까지 하겠다는 의미여서 홍콩 자치권 침해라는 반발이 예상된다. 초안은 국가안보공서와 국가 유관 기관들이 특수한 상황에서 홍콩 국가안보 범죄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은 중앙정부의 통치권 행사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명시했다. 이는 중앙 정부가 홍콩 보안 사건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탄야오쭝 전인대 상무위원은 “홍콩보안법 관련 사건에 대해 홍콩 정부가 다루기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중앙정부가 내릴 경우 (중국 본토로의) 범죄인 인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탄 위원은 최근 “특히 외국 세력이 홍콩 내정에 개입한 사건의 경우 중앙정부가 다뤄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덩중화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 부주임도 지난 14일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해치는 중대 범죄는 중앙정부가 사법권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보안법이 시행되면 반중 인사나 민주화 운동가가 중국 본토로 끌려가 재판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지난달 22일 전인대 개막식에 참석한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 AFP연합뉴스

초안에서는 또 홍콩 정부가 국가안보 수호 업무 및 책임을 지는 ‘홍콩 국가안보수호위원회’를 설립하고, 이 기구는 중국 정부의 감독·문책을 받도록 했다. 이 위원회는 홍콩 행정장관이 의장을 맡고 율정사(법무부), 보안국, 경무처(경찰청), 재정사(기획재정부) 등 정부의 각 분야 국장급들이 참여한다. 우리로 치면 국무회의급 심의기관인 셈이다. 국가안보위원회는 국가안보 수호에 관한 정세 분석 및 계획 수립, 국가안보 관련 정책 수립, 법률제도 및 집행기제 구축 추진 등을 담당하게 된다. 중앙정부는 위원회에 ‘국가안보사무 고문’을 파견해 자문 형태로 홍콩의 국가안보 사무에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홍콩 경무처에는 국가안보수호 관련 부서를 만들고 율정사에는 국가안보 범죄를 적발·기소하는 부서도 만들도록 했다. 초안에서 홍콩 행정장관이 전·현직 법관 가운데서 국가안보 범죄 사건을 처리할 판사를 지명하도록 한 부분은 사법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 특히 논쟁적이다. 필립 다이크 홍콩법정변호사회 회장은 “기소를 담당하는 검찰 측과 이해관계가 있는 행정장관이 판사를 선임하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홍콩 야당은 “중국 본토에서 온 고문이 홍콩 국가안보위원회 최고위에 앉아 홍콩 당국에 명령을 내리게 되는 상황에서 행정장관이 지명하는 재판관의 공정성은 더욱 의심받을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홍콩보안법에는 기존 홍콩 법률과 충돌할 경우 홍콩보안법이 우선한다는 내용도 초안 부칙에 포함돼 전인대 상무위가 홍콩 법률을 무력화시킬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성조기를 들고 시위하는 홍콩 시민들. AP연합뉴스

사이먼 영 홍콩대 법학원 교수는 이와 관련 “전인대 상무위가 홍콩 법률에 대한 해석 권한을 가질 수 있다는 게 가장 걱정된다”며 “새 보안법의 패권적 조항이 놀랍다”고 말했다. 초안은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행위, 외국 또는 역외세력과의 결탁 등 국가안보를 해치는 4가지 범죄와 형사 책임을 규정했다. 당초 초안의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 문구에 ‘외국 세력과 결탁’이라는 표현이 포함됐다. 홍콩대 법대 푸화링 학장은 이에 대해 “중국을 제재하도록 외국에 로비하는 것도 ‘결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고, 링빙 시드니대학 법대 교수는 “외국에 로비하거나 외국 자금 수령 및 포럼 공동개최 등도 ‘결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초안은 1조에서 “선거에 출마하거나 공직을 맡으려는 홍콩인은 홍콩 기본법을 지지하고 홍콩 정부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선서를 하거나 문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기도 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