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촉발한 한반도 위기의 분수령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가 될 전망이다. 북한군은 중앙군사위 비준이 이뤄지는 대로 개성공단 내 방사포 배치와 서해안 일대 무력시위, 대남전단 살포 등 각종 군사 행동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당 중앙군사위원장이기도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참석해 남북 관계 관련 입장을 밝힐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북한은 회의 일정을 밝히지 않았으나 수일 내에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 위원장은 한반도 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될 때 돌파구 마련을 위해 중앙군사위 회의를 소집해 왔다. 김 위원장은 2015년 8월 우리 군이 목함지뢰 도발에 대한 보복 조치로서 대북 심리전을 재개하자 중앙군사위를 긴급 소집하고 대북확성기 타격계획을 비준했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이번에도 당시와 같은 절차에 따라 대남 군사적 행동의 세부계획을 중앙군사위에 제출해 비준을 받은 뒤 행동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중앙군사위 회의를 직접 주재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렇게 될 경우 지금까지 김 제1부부장이 행사해 왔던 대남 공세의 지휘권은 김 위원장으로 넘어오는 모양새가 만들어진다. 남북 관계를 ‘대적(對敵) 관계’로 규정하겠다는 김 제1부부장의 엄포가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 차원에서 공식화될 수도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이 대남정책의 전면에 나설 경우 한반도 위기 상황은 장기화를 피할 수 없다. 북한의 대남 공세는 지금까지 김 제1부부장이 진두지휘해 왔다. 김 위원장 자신은 공개적으로는 대남정책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이 남북 정상 간 소통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 김 제1부부장을 내세웠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김 위원장마저 대남 공세에 가세하면 남북 관계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정면충돌로 치닫게 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1일 “이번 중앙군사위 회의 의제는 대남정책과 관련돼 있어 어떻게든 김 위원장이 메시지를 낼 수밖에 없다”며 “남북 관계가 이미 파탄 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별다른 책임감이나 부담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마지막 카드’를 남겨두기 위해 이번에도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중앙군사위를 김 위원장 없이 약식으로 개최하거나 회의를 열지 않고 군사 행동계획을 서면으로 승인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게 된다”며 “중앙군사위를 열면 김 위원장이 직접 명령하는 모습을 연출해야 하는데 이는 나중에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도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김 위원장이 관련 내용을 비준했다는 수준의 보도만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 제1부부장이 중앙군사위에 출석할지 여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김 제1부부장은 중앙군사위원이 아니어서 명목상으로는 회의 참석 자격이 없다. 다만 김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 총괄’로 불리는 등 최근 들어 포괄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미뤄 이번 회의에서 신임 위원으로 보선되는 형식으로 중앙군사위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제1부부장이 중앙군사위원까지 겸직할 경우 김 위원장에 이은 2인자 지위가 더욱 확고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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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손재호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