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쪽에 늘 아쉬움으로 남은 대회가 2008년에 우승을 놓친 한국여자오픈입니다. 그 아쉬움을 이제 추억으로 바꿨습니다.”
유소연(30)이 마침내 한국여자오픈을 정복했다. 2009년 중국, 2011년 미국, 2014년 캐나다, 2018년 일본에서 차례로 여자오픈을 정복한 유소연은 조국에서 통산 5번째 ‘내셔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차기 도전 무대로 ‘골프 종주국’ 영국의 위민스브리티시오픈을 지목했다.
유소연은 21일 인천 서구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파72·6929야드)에서 2020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두 번째 메이저 대회로 열린 제34회 한국여자오픈을 최종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우승했다. 단독 2위 김효주(12언더파 277타를·25)를 1타 차이로 밀어내며 거둔 올 시즌 정규 투어 첫 승이다.
유소연에게 한국여자오픈은 2008년 KLPGA 투어에서 데뷔한 뒤 프로 13년차에 이를 때까지 세계를 무대로 펼쳐온 ‘여자오픈 도장깨기’에서 미완으로 남은 과제였다. 유소연은 특히 데뷔 시즌의 이 대회 준우승을 지난 12년간 잊지 않았다. 그렇게 ‘4전 5기’로 한국여자오픈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이번 우승으로 유소연은 지난 2015년 8월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 이후 4년10개월 만에 KLPGA 투어 통산 10승을 달성했다. 우승 상금 2억5000만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극복 기금으로 전액 기부할 계획이다.
유소연은 대회를 마치고 찾아온 클럽하우스 내 미디어센터에서 “12년 전에 우승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안고 살아 왔다. 그래서 이번 우승에 부여하는 의미가 크다”며 “이제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소연은 2012년에 건너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신인왕을 차지했고, 2017년 한때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강자다. LPGA 투어 통산 6승을 거뒀고, 현재 세계 랭킹은 18위에 있다. 이미 세계를 무대로 활약해 온 유소연에게 전장의 긴 거리와 곳곳에 도사리는 난코스는 큰 장애물이 아니었다.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은 코스 전장 6929야드에 길이 80㎜짜리 러프로 그린을 둘러싸 오버파를 끌어내는 난코스로 악명이 높다. 6900야드를 넘긴 코스에서 펼쳐진 대회는 KLPGA 투어 사상 처음이다. 장타를 치는 선수에게 유리할 수 있다. 지난 시즌 LPGA 투어에서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 253.50야드를 기록한 유소연은 장타자가 아니지만, 특유의 기복 없는 경기력으로 난코스를 뚫었다.
특히 해저드·러프와 같은 위험 요소로 가득한 12~14번 홀, 이른바 ‘베어즈 랜드마인’(곰의 지뢰)에서 유소현은 나흘간 단 1타도 잃지 않았다. 지난 19일 2라운드에서 이 홀을 연속 버디로 지나가는 진기록도 썼다. 유소연은 “LPGA 투어에서 방법을 찾아온 경험을 이번 대회 난코스를 지나가는 동력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유소연은 앞선 사흘보다 다소 부진했던 이날 버디와 보기를 1개씩 쳐 이븐파를 적어냈다. 특히 후반부 9개 홀에서 1타 차이인 김효주와 파 세이브 행진을 계속하며 살얼음판 승부를 펼쳤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두 선수가 나란히 세컨드샷을 벙커에 빠뜨린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유소연은 벙커샷을 홀컵 60㎝ 앞에 붙인 뒤 파 퍼트에 성공해 우승을 확정했다.
인천=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