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독식’ ‘판단착오’… 거세지는 외교안보라인 책임론

입력 2020-06-19 04:02

북한의 도를 넘는 대남 공세에 우리 정부가 무기력한 모습을 노출하면서 문재인정부 외교안보라인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진전만 바라보다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할 모멘텀을 놓쳤고, 결과적으로 남북 관계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까지 포함하는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는 상황이다.

외교안보라인 책임론은 최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비난 담화에 이은 대남 공세로 남북 관계가 파탄 직전까지 치달으면서 불거졌다. 정부는 김 제1부부장의 첫 담화 직후 대북전단의 법적 규제 조치를 발표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는 듯했지만 북한이 아랑곳하지 않고 공세 수위를 더욱 높이자 속수무책 상태에 놓이고 말았다.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섣불리 정 실장과 서 원장을 대북 특사로 파견하겠다고 제안했다가 역공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문재인정부 외교안보라인의 ‘컨트롤타워’는 청와대 국가안보실로 꼽힌다. 하지만 국가안보실이 민감한 외교안보 관련 정보를 움켜쥐고 일선 부처에 공유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부처 차원에서 결정 가능한 세부 사안까지 청와대가 일일이 개입하는 탓에 공무원들이 청와대 지시만 수동적으로 기다린다는 얘기도 관가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국가안보실 내부에 마땅한 북한전문가가 없다는 비판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MBC라디오에서 “정보를 누가 독점하고 쥐지는 않는가, 부처에 내장된 불만은 없는가,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터닝 포인트의 계기가 왔다”고 강조했다.

외교안보정책 결정 과정의 불투명성도 문제로 제기된다. 개별 부처뿐 아니라 국가안보실까지 좌지우지하는 ‘핵심 그룹’이 따로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이 그룹이 일방적으로 의사 결정을 끌고가면서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들이 뒷전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전직 정부 당국자는 18일 “정 실장이 자기 보좌관 하나 마음대로 기용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개편론도 나오고 있다. NSC 상임위원장 직책을 지금처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아니라 부처 장관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정부 당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을 겸직했던 사례가 거론된다.

문재인정부 외교안보정책 방향 자체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인적 쇄신만으로는 큰 변화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재 북·미 대화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어 문재인정부의 남·북·미 선순환론이 재가동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미 대화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고, 북한까지 대남 총공세에 나서면서 현재로서는 우리 정부가 움직일 공간이 거의 없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상황기획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 상황에서 인사 조치를 바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우리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차분한 계획과 장기적 로드맵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사표를 재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려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김 장관 사의 표명 이후 외교안보라인 전면 개편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적절한 사표 수리 시점을 고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 실장이 사의를 표명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사의 표명이라는 얘기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인사와 관련된 부분은 최종 결정되면 그때 공식적으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조성은 임성수 박재현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