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 당국 간 협의체인 한·미워킹그룹이 남북 관계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한·미워킹그룹을 ‘친미사대의 올가미’로 규정한 데 대해 여권과 진보 성향 시민단체, 남북 관계 원로들이 적극 호응하면서다. 그동안 한·미워킹그룹은 정부의 독자적 대북 정책 추진에 발목을 잡아 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다만 북한 비핵화 협상이 아무런 진전을 내지 못한 상황에서 워킹그룹만 문제 삼는 것은 핵심에서 벗어난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한·미워킹그룹은 2018년 11월 남북 관계와 대북 제재 이행 등 한반도 관련 사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협의체로 출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돌연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하는 등 ‘엇박자’가 자주 나타나자 양국 간 입장 조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만들어졌다. 하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시간이 갈수록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 추진과 그에 따른 제재 면제 문제를 논의하는 방향으로 좁혀졌다.
북한은 한·미워킹그룹 출범 직후부터 반감을 표해 왔다. 당시는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때여서 북한은 워킹그룹을 자신들을 고립시키고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간섭토록 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였다. 김 제1부부장이 지난 17일 담화에서 “한·미실무그룹을 덥석 받아 물고 사사건건 북남 관계의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바쳐 왔다”고 비난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이와 유사한 인식은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과 진보 시민단체, 남북 관계 원로들 사이에서 공유돼 왔다. 남북 공동 유해발굴 사업과 이산가족 화상상봉, 대북 타미플루 제공 등 낮은 단계의 남북 협력조차 한·미워킹그룹 차원에서 복잡한 절차를 밟으면서 워킹그룹 자체가 남북 관계의 ‘걸림돌’처럼 비쳤다.
여권 일각에서는 한·미워킹그룹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홍익표 의원은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확인이 안 되고, 어떤 조건에서 중단하는지 종료 시점도 없다”고 말했다. 당정의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에도 한·미워킹그룹 비판론이 나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반면 한·미워킹그룹을 비판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워킹그룹은 협의체에 불과할 뿐이며, 유엔 안보리 결의와 미국 행정부의 독자 제재 등 얽히고설킨 대북 제재 자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북 인도지원 단체들 사이에서는 대북 제재 관련 업무 절차가 극단적으로 복잡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손톱깎이와 옷핀, 살균소독기 같은 물품조차 대북 반입 금지 물품에 해당돼 제재 면제를 받는 데 길게는 수개월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미국에 급파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와 협의할 예정이다. 북한 공세 대응, 긴장 완화 방안 등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
▶
▶
▶
▶
▶
▶
조성은 신재희 이상헌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