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어른들에게 묻는다… 영화보다 잔혹한 실화를 영화로

입력 2020-06-21 20:14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동학대 작품을 소개하면서 어른들의 역할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동생 죽이고 열 살 언니에 누명

아동학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칠곡 계모사건’을 다룬 영화 ‘어린 의뢰인’의 한 장면. 웨이브 화면캡처

열 살 난 언니는 두 살 터울의 동생을 죽였다고 자백했다. 시신에는 멍이 가득했다. 조사 결과 범인은 계모였다. 상습적으로 때린 것도 모자라 아이가 사망하자 다른 딸에게 덮어씌웠다. 2013년 8월 한여름, 칠곡에서 벌어진 일이다.

영화 ‘어린 의뢰인’은 변호사 정엽(이동휘)이 아동복지센터에 처음 출근하는 날부터 시작한다. 계모 지숙(유선)에게 학대받던 10세 소녀 다빈(최명빈)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동생 민준(이주원)과 함께 정엽을 찾아왔다. 어느 날, 민준이 죽었다. 다빈은 자신의 범행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엽은 믿지 않았다. 그 날, 남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장규성 감독은 “힘든 시간을 겪은 아이의 마음에 집중했다”며 “영화를 보고 ‘미안함’만 남았다”고 말했다.

친부와 계모, 학대의 끝은 암매장

‘평택 원영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미쓰백’의 한 장면. 티빙 화면캡처

영화 ‘미쓰백’은 평택 학대 피해 아동 원영의 고달팠던 삶을 모티브로 한다. 원영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2016년 3월이다. 아이는 야산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됐는데, 친부와 계모의 짓이었다. 계모는 한겨울에 아이를 욕실에 감금하고 락스와 찬물을 부었다. 아이가 죽자 시신을 내버려 두다 냄새가 심해지자 야산에 묻었다.

영화는 피해 아동 지은(김시아)과 학대 경험이 있는 상아(한지민)의 연대를 그렸다. 상아는 어느 날 불쑥 눈에 들어온 지은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아이에게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봐서다. 게임에 중독된 친부는 지은을 수시로 발로 찼고, 동거녀는 날마다 아이를 화장실에 가두고 때렸다. 상아는 그런 지은을 안고 내달렸다. 다만 결말은 비극적이지 않다. 상아는 세상과 맞섰고, 지은은 학교로 돌아갔다. 영화 ‘미쓰백’은 고통받던 옆집 아이를 외면한 우리 모두의 참회록인 셈이다.

보호 요청했다가 살해당한 8살

아동학대 가해자들에 초점을 맞춘 다큐 ‘게이브리얼의 죽음: 누구의 책임인가?’의 한 장면. 넷플릭스 화면캡처

넷플릭스에도 아동학대 문제를 다룬 묵직한 콘텐츠들이 적지 않다. 올해 선보인 넷플릭스 6부작 다큐멘터리 ‘게이브리얼의 죽음: 누구의 책임인가?’는 8살 소년 게이브리얼이 엄마와 그의 애인에게 잔혹하게 고문당해 죽음에 이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상처와 멍으로 얼룩진 게이브리얼은 담임 교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교사는 아동복지국에 신고해 복지사가 가정을 방문하도록 한다. 그러나 되풀이되는 복지사의 방문은 보호자가 게이브리얼에게 보복을 하는 빌미가 될 뿐이었다.

이 작품이 수작인 이유는 아동학대 문제를 다루면서도 보호자 혹은 부모의 정신이상과 같은 개인 일탈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어서다. 게이브리얼을 보호할 복지 시스템은 이미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관료주의에 쩌든 복지 책임자들은 게이브리얼을 보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사회가 방치한 게이브리얼 사건을 끈덕지게 파고들면서 아동복지 시스템의 실패 이유를 조명한다.

쌍둥이, 숨겨졌던 유년의 기억

쌍둥이 성적 학대 사건을 다룬 다큐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의 한 장면. 넷플릭스 화면캡처

지난해 공개된 85분짜리 다큐멘터리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는 사고로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은 알렉스와 그의 쌍둥이 형제 마커스의 이야기다. 알렉스는 마커스로부터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라났다는 말을 들으며 현재를 재구성한다. 하지만 알렉스는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마커스는 그제서야 “우리들이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힌다.

다큐멘터리는 진실의 편린이 밝혀진 후 알렉스와 마커스가 겪는 정신적 격랑과 변화를 풀어낸다. 몰입감 높은 연출이 특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단아(Black Sheep)’로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애드 퍼킨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박민지 강경루 기자 pmj@kmib.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