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끝 꿈틀… ‘끝판왕’ 위세에 살판난 사자

입력 2020-06-19 04:08
삼성 라이온즈 오승환이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 9회 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오승환은 이날 2연속 세이브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9회를 당연히 잘 막아줄 거라 생각해 편하게 경기 봤어요.”

지난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이날 2승(2패)째를 챙긴 삼성 선발 투수 김대우(32)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팀이 6-3으로 앞선 9회 말을 이렇게 떠올렸다.

삼성과 김대우의 승리를 지켜낸 마무리 투수는 ‘끝판왕’ 오승환(38).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팀 타율 0.295로 KBO리그 2위에 올라 있는 두산의 세 타자를 단 9구만에 삼자범퇴로 돌려세우고 경기를 끝냈다.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마운드가 빈 틈 없이 가득 채워진 것 같았다.

오승환이 마무리로 전격 투입된 16일 잠실 두산전에서 한·미·일 통산 400세이브의 대기록을 세운 다음날 또 다시 세이브를 추가하며 연일 끝판왕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다소 침체됐던 ‘전통의 명가’ 삼성의 분위기를 살려냄과 동시에, 역대 아시아 최다 세이브 기록에도 7개 차이로 다가섰다.

사실 지난해 8월 삼성과 계약을 체결한 뒤 지난 9일 10개월 만에 경기에 투입된 오승환의 활약에 의문이 제기됐던 것도 사실이다. 복귀 전 KBO리그에서 통산 444경기 277세이브로 역대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웠고, 일본 프로야구(80세이브), 미국 메이저리그(42세이브)에서도 진가를 증명한 대투수지만, 어느덧 30대 후반인 나이에 오랜 시간 실전 경기에도 나서지 못해서다.

실제로 오승환은 복귀 뒤 첫 3경기에서 3이닝 4피안타 2자책으로 과거와 같은 압도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허삼영(48) 삼성 감독도 “한창 좋을 때만큼 딜리버리가 길어져야 공이 내려찍힐 수 있다”며 “내가 알고 있는 강점이 나온다면 언제든 마무리로 기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허 감독은 16일 경기에서 오승환을 마무리로 투입했고, 오승환도 세이브로 화답했다. 한창 때만큼은 아니지만 ‘돌직구’(17구)도 최고 구속 150㎞까지 올라온 데다, 시속 130㎞ 내외의 변화구(10구)를 적절히 섞어 던져 직구만 기다리던 타자들을 당황케 했다.

허 감독은 다음날 “마무리한다고 이슈가 되면 선수에 부담을 줄까봐 조심스럽게 투입했다”며 “오승환이 이전 세 경기보다 움직임과 릴리즈 연결이 좋아졌다”고 흡족해 했다. “좋던데요 나는 그냥…가장 좋을 때보다야 볼 끝은 떨어졌겠지만 제구력도 좋고.” 패장 김태형(53) 두산 감독도 인정할 정도. 17일 경기에서 오승환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됐다. 직구(3구)보다 커브(1구) 슬라이더(1구) 싱커·투심(4구) 등 변화구 구사율을 더 높이는 자유자재의 볼 배합으로 타자들을 요리하고 삼성의 3연승을 지켜냈다.

“승환이 형이 합류하면서 팀 분위기가 많이 올라왔죠.” 김대우의 말처럼, 오승환이 경기에 복귀한 뒤 삼성은 8경기 6승2패의 호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승률도 시즌 처음으로 5할(19승19패)을 기록해 어느덧 중상위권을 넘보고 있다. ‘오승환’이라는 이름만으로 초조한 접전 상황에서 동료들에겐 신뢰감을, 타 팀엔 불안감을 심어준다. 허 감독은 “구위를 떠나 퍼포먼스가 좋다. 마운드에서의 침착성, 표정관리 이런 건 누가 어떻게 감히 따라하지 못한다”고 했다.

279세이브로 이미 KBO리그의 역사를 매 경기 써나가고 있는 오승환은 이제 아시아 세이브 신기록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현 기록은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의 레전드 이와세 히토키(46·은퇴)가 기록한 407세이브다. 경신까지 앞으로 7개 남았다.

이동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