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아있다’(감독 조일형)의 세계에 탈출구는 없다. 좀비를 때려잡거나 장기적인 생존을 도모하는 대신 당장 눈앞의 생존이 급한 영화 속 세계에서 주인공들은 한없이 무력하다. 아주 작은 희망을 끝까지 붙잡고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영화가 말하는 희망은 지금 ‘살아있다’는 생존 그 자체다.
‘#살아있다’는 곧장 본론으로 진입한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준우(유아인)는 식탁에서 외출한 부모님의 메모를 발견한다. 먹을 게 별로 없으니 장을 보라는 내용이다. 곧바로 게임에 접속한 준우는 ‘지금 TV 봤냐’는 유저들의 이야기에 거실로 나가 TV를 켠다. 원인불명의 폭동이 발생했다는 뉴스에서 고개를 돌려 베란다 밖을 보자 아파트 주민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아수라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준우 역시 갑자기 들이닥친 이웃 주민의 눈동자가 붉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살아있다’에 등장하는 생존자 준우와 유빈(박신혜)은 역대 국내에서 소개된 좀비 장르 영화에서 가장 약하고 무력한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원인불명의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표현된 좀비를 상대하기에 적합한 인물들이 아니다. 대부분 주민들이 좀비로 변한 상황에서 오직 이들만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도 영화는 큰 관심이 없다. 영화 ‘엑시트’(감독 이상근)처럼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재난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것 역시 아니다. 기존 좀비 장르의 전형적인 전개를 기대했다면 실망하기 쉽다.
‘#살아있다’는 주인공들에게 좀비들을 치료할 방법이나 뚫고 나갈 무기를 쥐여주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고립된 아파트에서 겪는 어려움과 외로움, 삶의 의미를 그린다. 영화는 절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준우가 상황을 인식하고 희망을 포기하게 되는 상황을 따라간다. 그 이후엔 유빈을 만나 작지만 끈끈한 유대를 형성하고 함께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과정에 집중한다. 두 사람을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의 은유로 내세운 영화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허망한 메시지를 ‘#살아있다’는 SNS 생존 신호로 바꿔놓는다. 절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고 누군가의 미약한 신호가 다수의 연대로 확장되는 체험은 그 자체로 희망적이다.
모두에게 친숙한 아파트라는 공간을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재탄생시킨 도시 좀비 장르물로는 합격점을 줄 수 있다. 올해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의 여파로 서로 사회적 거리를 두는 현실 상황이 공감을 불러일으킬 여지도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답도 없이 막막한 고립 재난물로는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이미 비슷한 주제, 비슷한 장르로 지난해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엑시트’가 이뤄놓은 성취의 그림자가 짙고 깊다. 뜬금없이 맺어지는 비현실적인 결말 역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상영 시간 대부분을 자신의 존재감으로 채워낸 배우 유아인과 섬세한 연기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 박신혜의 열연은 부족함이 없다. 24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준범 쿠키뉴스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