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 제안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며 이를 조롱거리로 삼았다. 북한은 문 대통령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특사 자격으로 파견하고 싶다는 뜻을 지난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으로 전달했지만,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이를 거절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17일 공개했다.
중앙통신은 “15일 남조선 당국이 특사 파견을 간청하는 서푼짜리 광대극을 연출했다”며 “남측은 문 대통령이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에게 특사를 보내고자 하며 특사는 정 실장과 서 원장으로 한다면서 방문 시기는 가장 빠른 일자로 하며 우리 측이 희망하는 일자를 존중할 것이라고 간청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측이 앞뒤를 가리지 못하며 이렇듯 다급한 통지문을 발송한 데 대해 김 제1부부장은 뻔한 술수가 엿보이는 이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렸다”고 전했다.
통신은 특히 문 대통령을 겨냥해 “남조선 집권자가 위기극복용 특사 파견놀음에 단단히 재미를 붙였다. 이제 더는 그것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정부의 특사 제안은 국정원과 통일전선부 간 핫라인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특사 파견 관련 접촉 내용을 공개한 것은 우리 측에 망신을 주고 대화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지난해 11월에도 문 대통령 친서를 일방적으로 공개했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하도록 초대장을 보내며 직접 참석이 불가능할 경우 특사를 대신 보내도 된다는 뜻을 전했다. 그런데 북한은 친서 내용을 약 2주 후 알리며 공개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
북한은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1년에도 남북 비밀접촉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중앙통신은 정부 고위 당국자의 실명을 적시하며 그해 5월 베이징 비밀접촉에서 우리 측이 남북 정상회담을 “구걸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남측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으니 비밀접촉을 갖자고 했다”고 밝혔다. 이에 우리 정부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비공개 특사 제안을 공개한 건 국제 외교규범을 깬 것”이라며 “남측을 몰아붙이고 망신을 주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모든 라인은 끊었지만 국정원과 통전부 간 라인은 살아 있는 점은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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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