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역사 탐방하며 ‘비감의 경계선’ 살핀다

입력 2020-06-18 18:01
남북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촬영한 사진이다. 판문점은 ‘슬픈 경계선’의 저자인 대만 인류학자 아포의 발길이 닿은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저곳에서 한국의 역사와 한국전쟁이 자신의 조국 대만에 끼친 영향을 되새긴다. 뉴시스

저자는 열다섯 살에 가족들과 처음 해외여행을 떠났다. 행선지는 일본의 오키나와. 저자는 오키나와의 문화유산을 하나씩 둘러본 뒤 2차 세계대전 당시 세워진 위령비 ‘히메유리탑’으로 향했다. 오키나와의 역사를 자세히 들려주던 가이드는 위령비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키나와인들이 스스로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할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일본을 증오하죠.” 여행객들은 가이드의 설명을 흘려들었는데 고등학생이던 저자는 이 말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고 한다.

성인이 돼서야 저자는 다시 오키나와를 찾았다. 때는 2010년. 오키나와의 역사를 제대로 실감한 것은 이 시기였다. 오키나와의 역사는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과거 이곳은 명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은 하나의 왕국이었다. 19세기에는 일본의 일부가 되었다. 2차 대전 때는 함포와 포탄으로 쑥대밭이 돼버렸다(전쟁으로 숨진 오키나와인은 4명 중 1명인 약 15만명에 달했다). 전쟁이 끝난 뒤 상당 기간 동안은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을 이끈 맥아더 장군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미국이 오키나와를 갖는 것을 반대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키나와인은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전쟁을 포기했다.”

아시아 곳곳엔 ‘경계선’이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일본에 갖는 감정은 양가적일 수밖에 없겠구나.’ 오키나와는 현재도 일본과 미국 사이에 끼어있는 곳이다. 오키나와 땅의 20%는 미군 기지로 사용된다. 이곳 사람들 상당수는 미군에 의존해 살아가야 한다. “미국인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라는 의미다. 일본이 나라의 변방인 오키나와를 각별히 챙기는 것도 아닌 듯하다. 오키나와의 실업률은 일본 본토의 2배에 달한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땅이 아니었고, 지금도 홀대받는 곳이니 오키나와 사람들 마음은 일본과 미국 사이를 서성일 수밖에 없다. “정체성의 격변”으로 인한 여진이 계속 마음속에 파장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오키나와에 갔을 때 숙소 직원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은 일본인인가요.” 까무잡잡한 피부 때문인지 얼굴에 ‘남국’의 분위기가 어려 있던 직원은 “당연하죠”라고 답했다. 하지만 대만 출신인 저자가 과거 대만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고 말하자 직원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일본으로부터 식민통치를 당했어요. 앞으로 더 많이 알려주세요.”

사실 이처럼 역사의 흉터 탓에 기묘한 정체성을 지니는 지역은 아시아 곳곳에 수두룩하다. 하지만 한국의 학교에서는 동남아시아, 혹은 동아시아 특정 지역의 역사는 허투루 다루니 한국 독자로서는 이들 지역을 여행하면서도 현지인의 가슴에 새겨진 아픔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슬픈 경계선’은 대만의 여성 인류학자 아포(阿潑)가 쓴 아시아 여행기다. 그의 프로필에서 눈여겨봄 직한 포인트는 국적이다. 대만은 일국양제를 주장하는 중국 탓에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대접받지 못하는 나라다. 대만인이라면 외국인을 만날 때 자국과 중국이 왜 다른지 설명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러니 대만인이라면 자주 이렇게 자문할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국가’는 나와 너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된다. 하지만 국가와 국경이 나와 당신의 차이와 갈등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싱가포르 일본 중국…. ‘슬픈 경계선’은 이들 나라를 둘러본 여행기다. 아시아의 이름난 관광지나, 유명 도시의 맛집 정보는 등장하지 않는다. 비극의 현장을 묘사한 ‘다크 투어리즘’ 여행서도 아니다. 저자는 “개입하는 방관자”를 자처하면서 이들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가 남긴 “슬픈 경계선”을 더듬는다. 책을 읽으면 분단국가 한국에 사는 우리의 아픔이 베트남인이 겪은 슬픔, 혹은 대만인이 마주한 비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서로의 역사가 연결돼 있음을 확인케 해주는 지점도 적지 않다.

역지사지의 힘

저자가 책상물림 인류학자로 남지 않고 직접 아시아의 ‘경계’를 탐방한 이유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책에 등장하는 첫 여행지는 베트남이다. 중국과 베트남 접경 지역에서 저자는 열차를 탔다가 중국 밀입국자를 걸러내려는 경찰 탓에 모욕적인 일을 겪는다. 여권을 보여줬지만 경찰은 대만을 의미하는 ‘리퍼블릭 오브 차이나(Republic of China)’에서 ‘차이나’만 읽고선 그가 중국인일 거라고 넘겨짚는다. 이런 일들은 이후에도 계속 벌어진다. 저자는 “순진한 섬나라 국민은 국경 근처에 와서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며 “그것의 의미는 ‘나’라는 한 개인에 있는 게 아니라, 나와 타인 사이에 놓인 연결과 단절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국가가 내게 발급해준 여권이 나를 증명해주지 못할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이런 일을 겪고 나서야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와 같은 물음들을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슬픈 경계선’은 독자들을 아시아의 근현대사에 드리워진 그늘로 안내하는 서늘한 작품이다. 대만과 한국의 공통점을 많이 발견케 해주는 지점들도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말처럼 인류학자의 일은 “사람과 문화를 소환해내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경계선을, 경계선은 편견과 냉대의 문화를 만든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진부한 결론처럼 느껴지지만 저자의 결론은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갖자는 거다. 그는 “타인을 이해하는 일을 겁낼수록 편견과 폭력이 복제되어 퍼져 나가고 대물림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이런 글을 적어두었다.

“설령 나, 당신, 그를 구분 짓는 모든 경계선을 마음속에서 말끔히 지워내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그러한 경계선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노력해볼 수 있다. 그 경계선이 잠깐이라도 부드럽게 풀리도록 마음을 열 수도 있다. …다른 국가, 다른 종족, 다르다고 생각했던 모든 이들을 새로이 인식해보는 것은 어떨는지. 그들이 바로 우리이고, 우리가 그들이 될 수도 있음을 빠르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지사지를 거치고 난 다음에야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우리’가 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