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문화] 가요계 중소 레이블 직격탄… 트로트 시장도 외화내빈

입력 2020-06-18 20:01
한 공연장에서 가수의 무대에 열광하는 관객들 사진이다. 하지만 저런 장면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이제는 보기 힘들어졌다. 공연이 주된 수입원이었던 뮤지션들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분위기다. 픽사베이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14일 개최한 온라인 유료 공연 ‘방방콘 더 라이브’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전 세계 107개국에서 75만명 넘는 팬들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콘서트를 시청했다. BTS가 공연을 통해 거둔 매출은 220억원을 크게 웃돈 것으로 알려졌다. BTS 외에도 최근 K팝 아이돌 그룹들은 온라인 공연에 눈길을 돌리는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가장 큰 수익원이었던 해외 투어가 불가능해지면서 ‘랜선 공연’이 대안 수익 모델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올봄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K팝을 대표하는 그룹들이 잇달아 온라인 유료 공연을 열었고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렇듯 K팝 그룹들은 저마다 랜선 공연이라는 자구책을 통해 ‘코로나 한파’를 이겨내고 있다. 하지만 가요계 가장자리에 놓인 인디 뮤지션이나, 이들이 속한 중소 레이블의 상황은 다르다. 가장 큰 수익원이었던 콘서트를 열 수 없게 되고, 음악 페스티벌도 자취를 감추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처해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 많은 중소 레이블이 존폐의 기로에 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 보릿고개’ 넘을 수 있을까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한 건물에서는 ‘코로나19 음악산업계 대응책 논의 세미나’가 열렸다. 국내 중소 레이블 44곳이 가입돼 있는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이하 협회)가 주최한 행사였다. 세미나에서는 인디 음악신이 맞닥뜨린 팍팍한 현실을 드러내는 증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종현 마스트플랜뮤직그룹 대표는 “상반기 예정된 공연 3개를 모두 하지 못해 대관료로만 수천만원을 잃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대관료 지원을 신청했지만, 순수예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답은 ‘민간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한 인디 밴드 멤버는 “관객 규모를 줄여야 한다면 정부가 티켓 가격의 절반이라도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소 레이블이나 인디 뮤지션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이유는 이들이 음원보다는 공연을 통해 수입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서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에겐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 대관이나 무대 장비 대여를 위해 지불한 계약금 등도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 중소 레이블 관계자는 “여름이면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봤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현재로서는 연말까지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분위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 레이블들이 처한 위기는 다양한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협회가 벌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협회 소속 레이블들의 경우 지난 2~4월 코로나19 탓에 열기로 했던 행사 61개를 취소되면서 36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떠안았다. 협회는 당시 대중음악 전체로 봤을 때 200여개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된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피해 규모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콘서트 시장 대목인 5월에도 각종 공연이나 음악 페스티벌은 열릴 수 없었다. 올여름 역시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기미가 보이면서 내년 상황도 불투명하다는 거다.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부회장이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코로나 19 음악산업계 대응책 논의 세미나’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제공

윤동환 협회 부회장은 “공연을 통해 주로 수입을 올리던 레이블은 90% 이상 매출이 감소했고, 음원 수입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회사들도 50% 이상 매출이 줄었다”며 “폐업 신고를 하는 레이블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19 여파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걱정”이라며 “가을쯤이면 많은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중소 레이블들은 정부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공연 취소나 연기에 따른 피해액을 얼마간 보전할 수 있게 해주고, 회사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도록 음원 제작이나 사무실 임대료 등을 지원해달라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대중음악에 대한 정부 지원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협회는 지난달 발표한 긴급성명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각종 지원 사업이 제작 부문을 홀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제작 환경에 대한 조사와 연구 지원, ‘랜선 라이브’ 등 이번 사태를 돌파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로트 전성시대? 코로나로 심각한 타격

최근 가요계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르는 트로트다. 지난 1~3월 방영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TV조선)이 35%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본격적으로 달아오른 트로트 열풍은 지금도 그 잔열이 식지 않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 임영웅 영탁 김호중 장민호 이찬원 등은 방송가 예능 프로그램 단골손님으로 자리 잡았다. 광고계의 러브콜도 끊이지 않는다. 요즘 방송가를 보면 ‘트롯신이 떴다’(SBS) ‘뽕숭아학당’(TV조선) 등 트로트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야말로 ‘트로트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트로트 신드롬은 일부 스타 가수에만 국한된 현상이라는 지적이 많다. 코로나19로 ‘행사’가 끊기면서 상당수 트로트 가수가 생활고를 겪고 있어서다. 알려졌다시피 트로트 가수들은 음반이나 굿즈 판매보다는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주최하는 행사 출연료가 주된 수입원이다. 코로나19로 인디 음악계가 사면초가에 몰렸다면 트로트 시장은 외화내빈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한 트로트 제작사 관계자는 “사무실 임대료와 매니저 인건비 등으로 매달 고정비가 수백만원씩 나가는 상황인데 봄부터 행사가 끊겨 걱정”이라며 “TV를 틀면 트로트 스타들이 나와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무명인 가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