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12번 간판 바꾼 아줌마, 유망 스타트업 대표된 비결

입력 2020-06-18 00:21
이나현 e블루채널 대표가 지난 5월 경북 구미에서 열린 투자설명회에서 자사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국밥집, 빵집, 죽집, 아이스크림가게, 돈가스가게, 편의점…. 20년간 12차례 가게 간판을 바꾸며 생계를 꾸렸던 평범한 주부가 유망 스타트업 대표가 됐다. 이나현(53) ‘e블루채널’ 대표는 17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삼성전자의 멘토링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내 인생 마지막 사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의약품 통합관리 솔루션에 도전했다”고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삼성전자 사회공헌 프로그램이자 스타트업 육성 정책인 ‘C랩 아웃사이드’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이날 이 대표의 영상을 삼성전자 뉴스룸에 공개했다.

이나현 e블루채널 대표가 경북 구미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그는 거주지 울산에서 평소 약을 사러 약국을 다니다 여러 차례 불편을 겪으면서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다. 이 대표는 “약국의 의약품 재고관리와 원가관리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서 인지 같은 약을 달라고 하면 못 찾는 약이 많고, 어떤 약은 사러 가면 다음 날 오라고 할 때가 많더라”며 “편의점의 제품관리 프로그램 같은 시스템을 약국에 적용하면 좋을 것 같아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2016년 사업을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영업이 잘 안 돼 사무실 임대료도 못 낼 형편이었다. 폐업을 고민하던 이 대표의 눈에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의 스타트업 모집 공고가 들어왔다. 삼성전자가 사외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공동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대표의 회사는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지원 업체로 선발됐다.

이나현 e블루채널 대표가 최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울R&D캠퍼스에서 삼성전자 뉴스룸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e블루채널은 지난해 3월부터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착수했다. 소프트웨어 전문가인 삼성전자 멘토를 만나 기술 분야 외에도 조직관리, 현장 지원 면에서 다각도로 도움을 받았다. 이 대표는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니까 주로 새벽 2~3시에 멘토님에게 ‘카톡’을 하거나 전화를 했는데 그때마다 친절하게 응대해주셨다”며 “삼성전자 멘토를 나만큼 빼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 결과 e블루채널은 10개에 불과했던 거래 약국이 150개로 15배가 됐고, 연간 매출은 10배 늘었다. e블루채널은 ‘경상북도약사회’, 의약품유통 기업인 ‘동원약품’ 등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e블루채널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임지미 약사는 “프로그램을 쓰고 나서 경영이 쉬워졌다”며 “남은 시간은 환자들을 돌보고 약품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나현 e블루채널 대표가 최근 경기도 성남 분당구 홈케어굿모닝약국에서 임지미 약사와 e블루채널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 대표가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전환시킨 데는 무엇이든 열심히 팔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회사원인 남편과 단돈 300만원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우리 부부가 한 얘기가 ‘정주영, 이건희 회장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수만명씩 먹여 살리는데 우리 둘이 열심히 일해서 (양가 부모님과 자녀까지) 일곱 식구 못 먹여 살리겠는가’라고 했다”고 한다.

남편은 착실히 회사에 다니며 월급을 받고 자신은 아이를 키우며 장사를 했다. 친정어머니가 늘 장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커서 그런지 가게 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장사머리’라는 게 있는지 (가게를) 할 때마다 잘 돼서 손해는 보지 않았다”며 “나이도 있고 (e블루채널은) 마지막으로 해본 건데 거의 포기 직전에 삼성전자 도움으로 기사회생했다”고 했다.

이나현 e블루채널 대표(왼쪽)와 고영일 경상북도약사회 회장이지난 5월 경상북도약사회에서 업무협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C랩 프로그램을 통해 모두 104개 외부 스타트업을 지원했고, 현재 40개 스타트업을 육성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C랩 프로그램을 각별히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창립 50주년 기념사에서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며 동반성장을 강조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