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살든지 죽든지, 망하든지 흥하든지

입력 2020-06-19 00:08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성경에 나와 있지만, 괜히 말이 씨가 될까 봐 잘하지 못하는 말씀이 있다. 바로 ‘살든지 죽든지’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근심하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서 풀려나든지 풀려나지 않든지 상관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살든지 죽든지 오직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기도를 해도 이왕이면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왕이면 흥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래서 바울이 했던 말처럼, ‘살든지 죽든지, 망하든지 흥하든지’는 좀처럼 말하지 못한다. 말이 씨가 될까 봐. 그런데 막상 죽게 해달라고 해도, 망하게 해달라고 해도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는다.

사람 목숨은 끈질기다. 죽으려고 아파트 15층에서 떨어져도, 살아야 할 사람은 14층 빨랫줄에 걸려서라도 산다. 오래 살려고 온종일 산을 누비며, 그야말로 산도사처럼 살아도 느닷없이 달려든 차에 치여 죽는 수도 있다.

사람의 생명은 결국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살든지 죽든지 해도 의외로 죽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잘 사는 수가 있다. 망하든 흥하든 해도 의외로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흥하게 되는 수가 있다.

1964년 ‘빙점’이라는 소설을 쓴 미우라 아야코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홋카이도의 아사히카와라는 도시에서 잡화상을 시작했다. 부부가 모두 착하고 성실해 가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님들이 많아졌다. 장사가 잘될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자신들 때문에 주변 잡화상의 손님들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한 것이었다. 오는 손님마다 다른 가게를 이용해 주시라고 정중히 부탁했고 나중에는 아예 일찍 가게 문을 닫아버렸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경쟁하는 가게가 망하기를 바랄 텐데, 그들은 오히려 옆 가게 장사를 걱정해줬다. 자신들은 망해도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된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우라 아야코는 그런 마음으로 가게를 일찍 닫다 보니 시간이 남았고 그때부터 글 쓰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소설이 ‘빙점’이다. 인간의 원죄를 다루는 ‘빙점’이라는 소설과 미우라 아야코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도 많은 영혼이 주께 돌아오고 있다. 그야말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필자도 일본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홋카이도다. 온천 하러 가려는 것이 아니라, 미우리 아야코 기념관에 가보고 싶다. 지금도 그곳 입구에는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이 붙어 있다고 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김대영 목사(미국 워싱턴 휄로십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