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언택트 시대 여름나기

입력 2020-06-18 04:01 수정 2020-06-18 04:01

바야흐로 ‘언택트(untact·비대면) 시대’다. 집에서 전화와 이메일, 인터넷메신저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업무를 보고 마케팅도 온라인에서 진행한다. 불과 몇 달 사이 비대면 활동은 일상이 됐다.

고 신영복 선생은 오래전 펴낸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여름 징역보다 추운 겨울 징역이 낫다고 썼다. 여름 징역은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름에)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옆 사람과의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요즘 상황을 적용해 보면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을 꺼리게 되는 여름이야말로 언택트 시대에 어울리는 계절인 셈이다.

날이 따뜻해지면 추운 겨울에 비해 야외 활동이 늘어나 사람 간 거리두기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하지만 폭염 상황이 닥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더위를 피해 시원한 실내나 무더위 쉼터 등에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홀로 지내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과 취약계층의 경우 가능성은 더 커진다. 전문가들이 코로나19가 여름에 사그라들 것이라고 기대하기보다는 폭염으로 방역 수칙을 지키지 못해 더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는 이유다.

특히 감염에 취약한 노인들은 복지관과 경로당 등이 휴관 중인 상황에서 더위를 피할 장소 찾기가 마땅치 않다. 정부와 지자체는 어르신 무더위 쉼터 운영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확진자가 늘면서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무더위 쉼터로 사람들이 모이면 거리두기가 어려워지고 자칫 바이러스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강요된 언택트 시대는 감옥 속 여름 징역을 현실에 옮겨놓은 듯하다. 대중교통에서, 거리에서, 실내에서 우리는 옆 사람을 내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 잠재적 보균자로 느낀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침 소리, 콧물 훌쩍이는 소리에도 긴장하고 옷깃만 스쳐도 몸서리를 친다. 정수기 꼭지에 대고 병에 물을 담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언택트 시대에 옆 사람에 대해 긴장하고 접촉을 걱정하는 모습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 당연함 속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언택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도 결코 확인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신영복 선생은 책에서 여름 징역 얘기에 이어 “머지않아 조석(朝夕)의 추량(秋凉)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기대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날씨가 서늘해지면 옆 사람이 따뜻한 가슴을 지닌 이웃임을 깨닫게 될까. 올여름 예고된 ‘역대급 폭염’을 어떻게 견뎌내야 본래의 이웃들을 다시 만나게 될까. 그저 버텨내는 게 아니라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보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택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안전한 콘택트 정책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마침내 코로나19 시대의 여름을 현명하게 넘길 수 있는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코로나19를 핑계로 미뤄오다 지난 주말 시골집에 다녀왔다. 몇 차례 입원과 퇴원을 거쳤던 아버지는 그럭저럭 그대로라고 하셨지만 예전보다 다리가 퍽 가늘어진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튀어나온 손가락 마디는 더 불거져 보였다. “잘 지낸다. 너희들도 별일 없지?” 언택트 수단인 휴대전화 속에서 들었던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언택트 시대에 나는, 이 여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멍하니 생각했다.

정승훈 사회부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