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의학 칼럼] 이 시대는 영적 본능 깨워야 할 때

입력 2020-06-19 18:49

시편 131편 2절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를 통해 하나님을 배고파하는 능력을 생각해 보자.

생존 본능만큼 강한 것은 영적인 본능이다. 영적인 본능은 하나님을 배고파하는 능력이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능력인 셈이다. 목마름을 느끼는 능력이라는 의미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내 영혼이 하나님과 붙어 있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는 본능이다.

영적 본능을 삶으로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이 다윗이다. 시편 131편은 3절로 구성돼 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다윗이 말년에 한 고백이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다윗이 신앙의 정점에서 이런 고백을 쏟아 놓은 것이다.

70세 다 된 노인이, 자신을 젖 뗀 아이 같다고 표현했다. 어머니 품에 있다는 표현도 눈길을 끈다. 젖을 떼고 어머니 품에서 떨어져 나간 아기가 어머니를 갈망하는 걸 표현한 대목이다. 어머니의 품이 사라지자 어머니를 배고파하는 것이다. 갈망과도 같다. 이게 다윗의 영성이 완성된 모습이다.

영성이란 만족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배부른 상태도 아니다.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상태, 바로 그것이 영성이다.

영적인 배고픔을 느끼는 능력,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능력, 하나님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목말라 하는 능력이 현대인에게는 부족하다. 대신 물질에 길들여지고 먹을 것에 길들 뿐이다. 명예와 권세, 세속에 길들고 있다. 영혼은 목말라 죽어간다.

선조들은 달랐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영혼이 목말라 죽어가는데도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영혼 없는 생존 기계일 뿐이다.

최근 스마트폰과의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어린 아기들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 주는 장면이 충격적이었다. 아기들은 그저 재미있어한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빼앗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사람과 교감할 나이에 스마트폰에 눈을 붙이고 웃고 즐기기만 하는 아기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린아이 안에 있어야 할 영적 본능, 엄마와 아빠를 갈망하고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본능이 마비되는 것이다.

그렇게 중독된 아이들이 다음세대로 자라고 있다. 언젠가는 이 나라의 주역이 될 것이다. 스마트폰이 친구고 스승이며 연인이자 하나님인 아이들이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이 시대는 철저하게 영적인 본능을 빼앗아가고 있다. 영적 본능을 깨워야 한다. 자녀들 안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을 갈망하는 본능을 자극해야 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이 땅에 왔는가.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답고 옳은 것은 무엇인가. 참된 행복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을 쥐고 살면 결국 하나님을 찾게 돼 있다. 진리는 무엇이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선한 것과 인간 본성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 답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런 물음을 갖고 있는 한 인간은 예배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에 몸서리치며 눈물 흘리면서 기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기도하고 울며 하나님을 배고파하는 능력, 이 영적인 능력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져야 할 본능이다. 오늘 하루 진리에 목마른 자로 살아 보시기를 권한다.

이창우 박사(선한목자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