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독일 교회 목회를 마치고 수원에 있는 한 교회에서 청빙을 받아 돌아왔다. 그 교회는 상처가 많은 교회였다. 전임 목사 시절 다툼이 있어 교회가 한 번 갈라지고 남아있는 교인들 역시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곳이었다. 300명가량 됐던 교인은 내가 부임했을 때 70명 정도만 남아 있었다.
그간의 갈등과 상처는 내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한번은 그 교회를 다니다 다른 교회로 옮긴 성도의 아들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참석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내겐 전 성도의 가정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한 장로님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혼식에 다녀온 후 새벽기도회 때였다.
“담임목사가 삯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속히 나가게 해주십시오.”
개인기도 시간에 그 장로님이 내가 들으라는 듯 기도했다. 교회의 분열로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까지 강퍅해진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한편으로 이렇게 상처 많은 교인들을 내가 과연 잘 돌볼 수 있을까 염려가 됐지만, 묵묵히 목회에만 열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고 말씀을 잘 준비해 설교하는 일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교인들의 마음을 조금씩 만져주셨다. 용서와 화해 사랑의 마음을 주셨다. 어느 기도회 날에는 그동안 지었던 죄들을 함께 통회하며 나도 울고 교인들도 울었다. 독일에서 했던 쌀 나누기도 시작했다. 재정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구제야말로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될 수 있는 한 많은 이웃에게 쌀을 나눴다.
교회신문도 만들어 전도용으로 사용했다. 어느 날 한 중년 신사가 교회신문을 보고 왔다며 등록했다. 산부인과 의사였는데 신문에 실린 구제사역이 감동이 됐다며 자기도 동참하고 싶다고 했다. 그 집사님의 헌신으로 교회는 더 많은 이웃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교인들의 마음이 치유되고 구제 사역에 힘쓰는 사이에 교인도 하나둘 늘기 시작해 2년 6개월 만에 교회가 갈라지기 이전인 300명 수준으로 늘었다.
2001년 옥수중앙교회의 청빙을 받았다. 옥수중앙교회로 올 때 어느 정도 기대가 있었다. 달동네로 유명한 곳이지만, 그래도 서울이니 수원보다는 목회환경적으로 여러 면에서 나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그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옥수중앙교회는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지은 빚이 10억원이나 됐다. 부임 전에는 전혀 몰랐다. 교인 150여명이 출석하는 가난한 달동네교회 형편에 10억원은 너무 큰 부담이었다.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끔 강 건너 압구정 거리를 지날 때는 나도 이렇게 부유한 동네에서 목회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적어도 압구정에 있는 교회 담임목사는 돈 걱정은 하지 않겠다 싶었다. 그런 부질없는 욕심은 곧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하나님 앞에 온 인생을 드려야 할 목사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자책이 되고 부끄러움에 눈물이 쏟아졌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