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번호는 추억, 포기 못해” 01X 종료 선언, 갈등 예고

입력 2020-06-17 00:25

“천덕꾸러기였던 5학년 제자가 훌쩍 커서 결혼을 한다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아직 이 번호를 쓰실까 싶어 조심스레 전화했는데 받으셔서 감사하다’고 말해 울컥했습니다. 왜 이 번호를 쓰냐고 말하는 녀석들에게 ‘난 최후의 1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었는데, 이렇게 정든 번호가 사라진다고 하니 맥이 풀립니다.”

011, 016, 017, 018, 019까지. 국내 이동통신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보급된 01X 번호가 25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가 됐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일부 사용자는 여전히 “수십년 추억이 담긴 번호를 포기하지 못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SK텔레콤의 2G 서비스 종료를 승인하면서 다음 달 단계적 절차에 돌입하는 가운데 LG유플러스 역시 같은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는 이달 중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2G용 주파수를 재할당받지 않는다는 의사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왜 정든 번호를 떠나보내야 할까. 이유는 사업자별로 부여한 식별번호(01X)가 일종의 ‘브랜드 파워’를 가지게 되면서 차별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번호로 인한 위화감이 조성되고, 통신사 간 경쟁이 저해된다고 판단해 2011년 ‘010 번호통합정책’을 전면 시행했다.

앞서 2012년 2G 서비스를 종료한 KT도 갈등을 빚었다. 당시 01X 이용자들은 정부의 번호통합정책이 개인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이에 대해 “통신번호는 개인의 사적 재산으로 볼 수 없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승산이 높지 않은 법적 다툼은 이번에도 이어질 조짐이다.

2G 서비스를 이어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통사 측은 소규모 가입자를 위해 해당 주파수를 재할당받아야 하는데 여기에만 수천억원대의 비용이 발생한다. 5G 인프라 구축에 한창인 이통사에는 큰 부담이다. 망 노후화로 인한 문제도 지속적으로 생기는데, 이를 유지·보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부품 수급도 어려워 재난·위급 상황에서 통신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도 우려되는 요소다.

정부와 업계는 내년 7월 010 번호통합이 실현됐을 때 전 국민이 8자리만 눌러 통화를 할 수 있는 편익이 발생하고,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G 종료로 확보되는 주파수 대역은 5G 품질을 높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2G 서비스 종료가 5G에 더 나은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