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끄기 운동 다시 해야죠, 바람개비도 중요해질 겁니다”

입력 2020-06-17 00:33
김창섭(왼쪽)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과 김용택 시인이 지난 4일 제주도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인근에서 에너지 전환 정책의 일환으로 '한 등 끄기운동'에 관해 대화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에너지는 인간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전기 없는 삶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과거 에너지 정책은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과 안전이 경제성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에너지 전환’을 선언한 배경이다. 에너지 전환 정책의 성공은 ‘수요 관리’에 달려 있다. 김창섭(60)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과 김용택(73) 시인은 한목소리로 “1960년대에 도입됐던 ‘한 등 끄기운동’을 시대에 걸맞은 형태로 부활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은 생활 터전인 섬진강의 아름다움과 강을 중심으로 한 삶의 모습을 시로 표현해 왔다. 농민들의 공동체 삶을 정겹고 격조 있게 형상화해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대표 작품으로는 ‘섬진강’ ‘맑은 날’ ‘그리운 꽃 편지’ ‘그 여자네 집’ ‘누이야 날이 저문다’ 등의 시집과 산문집이 있다. 그는 환경에 관한 관심이 남다르다. 2002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지난해에는 섬진강 홍보대사에 위촉되기도 했다. 지난 4일 제주 탐라 해상풍력발전단지에서 김 이사장과 김 시인의 대담을 통해 오늘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고민을 들어봤다.

◇김용택 시인=현 정부 들어 에너지공단이 유난히 바빠진 것 같다. 그만큼 에너지 수요 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에너지 문제가 정치적으로도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이라 공단 이사장 자리가 더욱 무겁고 힘들게 느껴진다. 다음 달 초 공단이 40주년을 맞는다고 들었는데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김창섭 이사장=1992년 3월 에너지공단에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팀장으로 유일하게 노동조합 활동을 했던 시간이 또렷이 기억난다. 공단에서 11년 근무하고 대학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학생들과 15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 지난달에 3년 임기 전환점을 돌았다. 1년 반 동안 일이 많았지만 후배들과 서로 신뢰할 수 있었다는 게 좋았다. 과거에는 공단이 후방에서 에너지산업 엑스트라 역할을 맡았다면 지금은 최선봉에서 실무를 이끌고 있다. 다음 달에는 공단이 설립 40주년을 맞는다. 에너지공단은 70년대 말 제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이 커지자 1980년 7월 4일 국가 에너지 절약 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으로 설립됐다. 대체에너지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03년 2월 신재생에너지센터 전신인 대체에너지개발보급센터를 설치했다. 2005년 7월 기후변화 업무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실적 등록소의 문을 열었다. 2010년 이후에는 녹색 건축센터 지정, 자동차 연비센터 설치 등 산업·건물·수송 등 부문별 에너지 수요 관리 업무에 주력해 왔다. 40년간 고효율·녹색·저탄소 시대를 선도하는 에너지 전문기관으로 명실공히 자리매김했다는 점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김 시인=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마찰이 빈번하다. 특히 원전이 그런 것 같다. 정부가 원전을 점차 줄이더라도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알려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대다수 일반인은 원전에 대한 정치적 쟁점이 지속하는 이유를 모를 거다. 원전을 어느 날 갑자기 없애버리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꽤 있다. 원전은 후쿠시마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서 보듯 역사적으로도 안전하지 않다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원전 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대안을 갖고 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김 이사장=지금은 앞서 말씀드린 강력한 수요 관리 정책과 함께 재생에너지 3020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성과는 현재진행형이다. 작년에만 재생에너지 설비 3.5GW를 신규로 설치했다.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 가중치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폐기물·바이오에너지 쏠림을 방지하고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와 해상풍력 활성화를 도모했다. RPS 제도로 신규 발전소 1만8289개가 진입했고 3398㎿ 설비를 새롭게 구축했다. 환경 훼손 방지를 위해 산지 일시사용허가제도도 도입했다. 무분별한 산림 훼손을 줄이기 위해 산지 태양광의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는 축소했다. 이 밖에도 한국형 FIT를 도입해 소규모 태양광 사업자에 대해 수익을 보장하고 행정 절차를 간소화했다. REC 가중치 우대 참여형 사업도 늘렸다.

◇김 시인=개인적으로 태양광보다 풍력발전이 정서적으로 안심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안사람과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풍력발전소를 볼 때마다 “세월이 지날수록 저 바람개비가 틀림없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대화한다. 지금 사는 전북 임실은 물론이고 대다수 시골 지역에서는 태양광 발전소를 흔히 볼 수 있다. 반면에 풍력발전기를 많이 보지는 못했던 거 같다.


◇김 이사장=풍력발전을 확산하는 건 공단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풍력발전추진지원단’을 설치해 풍력 사업 전 과정을 밀착 지원하고 있다. 태양광은 이미 보급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있지만 풍력은 조금 더 힘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태양광과 풍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풍력 관련 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열심히 뒷받침하고 있다. 육상에 더 짓느냐, 해상에 더 짓느냐는 다음 문제라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는 차세대 기술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경쟁력이 아닐까 싶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기술 도전을 즐겨야 할 때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부유식 해상풍력 그 다음 스텝을 바라보고 경쟁해야 한다.

◇김 시인=오랜 기간 학교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쳤다. 당시 교실 전등 스위치 밑에 ‘불 끄기’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다. 이런 때일수록 잠시 멈추고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 등 끄기운동’처럼 온 국민이 동참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물질이나 문명에서 잠시 비켜갈 때 안심한다. 옛것에 대한 그리움이기보다 당시 삶의 방식이나 정서가 지금 상황에 긍정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시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김 이사장=실제로 1960년대에 ‘한 등 끄기운동’이 등장하면서 에너지 절약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당시 한 등 끄기운동은 정치적 논쟁이 없었고, 국민이 받아들이는 가치관이나 의식 수준도 상당했다. 강력한 통합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가며 인사를 하듯 한 등 끄기운동은 우리 일상 그 자체였다. 전기가 남더라도 에너지 절약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 한 등 끄기운동을 하는 건 쉽지 않다. 누군가는 꼰대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당시와 같은 방식은 아니더라도 한 등 끄기운동의 정신을 되살려 현 시대에 걸맞은 캠페인을 해보려고 한다. 실무자들이 다양한 방법을 두고 논의 중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힘을 모아준다면 효과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김 시인=요즘 매스컴에서 ‘그린 뉴딜’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농촌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데 마당에 연못을 서로 터서 순환되게 하니 연못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돼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을 봤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그린 뉴딜도 우리 사회에 건강한 에너지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생각할 부분이 많다고 보인다. 공단에서도 이런 관점에서 그린 뉴딜에 관심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김 이사장=고효율 기술에 기반을 둔 산업 육성 시책이 그린 뉴딜의 핵심 사업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단도 그린 뉴딜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와 업무협약도 맺었다. 서울시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68%가 건물 부문에 집중돼 있다. 이번 협약으로 공단과 서울시는 건물 에너지 효율 향상, 신재생에너지 보급, 스마트에너지시티 조성에 머리를 맞댈 예정이다. 서울에서 ‘도시형 그린 뉴딜’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것이 궁극의 목표다. 에너지 다소비 건물 에너지원단위 개선, 공공건물 제로 에너지 건축물 인증 컨설팅, 노후 공동주택 설비 효율화 지원 등을 통해 건물 부문 에너지 이용 효율화를 추진해 보려고 한다. 또 서울시가 추진하는 마곡지구 스마트에너지시티 조성 사업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타 지자체와 그린 뉴딜 협력을 확대해 나가겠다.

김용택 시인이 쓴 헌정시 ‘바람이 팔랑개비를 돌려요’ 전문.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제주=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