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페인트 수돗물’ 공지 안한 성남시

입력 2020-06-17 04:03

경기도 성남 분당구 구미1동에 사는 30대 여성 A씨는 최근 양치질을 할 때마다 헛구역질을 자주 한다. 약 1주일 전부터 수돗물에서 페인트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기 때문이다. A씨는 아파트 주민들에 이어 옆 동네 주민들까지 인터넷 커뮤니티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리는 걸 보고 이 지역 전체 수돗물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16일 “다른 아파트에서는 노약자나 어린이들은 수돗물 사용을 자제하라고까지 안내방송이 나왔다고 한다”며 “샤워도 못 하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성남에서 수돗물에서 역한 페인트 냄새가 난다며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 사례가 늘고 있다. 세탁물에서도 페인트 냄새가 나는가 하면, 피부 발진과 헛구역질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성남 지역 맘카페 등 복수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지난 7일부터 15일까지 수돗물에서 나는 페인트 냄새를 문제 삼는 글이 여러 차례 올라왔다.

구미동 무지개마을에 사는 B씨는 15일부터 수돗물에서 페인트 냄새를 맡게 됐다고 한다. 양치하면서 눈이 따가워 재채기가 나올 정도였다. B씨의 어린 자녀 역시 양치하다가 냄새가 심하게 난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B씨는 “금곡동 청솔마을에 사는 한 지인은 지난 주말부터 자녀가 피부에 발진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성남시 측은 배수지의 물탱크 노후화로 방수페인트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수돗물에 페인트 냄새가 스며들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수돗물에서 페인트 성분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됐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성남시는 시민들에게 이런 설명조차 내놓지 않은 채 안이하게 대응했다. 사실을 알렸다가 주민들의 우려를 키울 것 같아 일부러 공지를 따로 띄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소독할 때 쓰는 염소처럼 수질 측정 결과 기준치 이하의 아주 미세한 페인트 성분만 검출됐다”며 “현재 탱크에 있는 물은 전부 폐수 처리했다. 주민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