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90)는 지난해 한국투자증권 분당PB센터에서 P2P(개인 간 대출)업체 ‘팝펀딩’과 연계된 펀드에 5억원가량을 투자했다. 이 업체는 홈쇼핑 납품 기업의 재고자산 등을 담보로 잡고 대출해 주는 곳이다. 만기가 짧고 원금 보장 가능성이 크다는 프라이빗뱅커(PB)의 말에 A씨는 투자를 결심했다. 그러나 최근 해당 펀드는 원금 상환에 실패해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십년간 거래한 센터의 PB가 집까지 찾아와 투자를 권유하기에 믿고 한 건데 이런 일이 생길 줄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IBK기업은행을 통해 디스커버리 펀드에 아내와 함께 총 45억원을 투자한 B씨(93)도 환매 지연 사태로 투자금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은행의 VIP 고객이었던 B씨는 “‘미국이 망하지 않는 한 이 펀드도 안전하다’는 설명에 투자한 것”이라며 “펀드의 위험도가 1등급이라는 건 최근에야 알았다”고 토로했다.
최근 증권사와 은행에서 판매한 사모펀드에서 연이어 환매 중단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 중 상당수가 60대 이상인 고령층인 것으로 파악됐다. 예금이 많고, 복잡한 사모펀드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집중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불완전판매 의혹은 쉽게 불식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는 1조원대 환매 중단을 일으킨 라임자산운용 사태와 유사한 부분이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라임 펀드 개인투자자의 전체 계좌 중 60대 이상이 46%(1857개)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스커버리 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 관계자는 16일 “현재까지 모인 피해자 중 60~70% 정도가 60대 이상인 분들”이라며 “70세가 넘는 고객에게 적금을 여러 개 해지한 뒤 펀드에 가입하도록 권유했다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구현주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펀드 상품 구조나 손실 가능성을 이해하기 힘든 분들과 안정적인 투자 성향을 가지신 고객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판매가 이뤄진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지난 11일 이사회에서 디스커버리 펀드 투자자들에게 원금의 50%를 선지급하기로 했다. 투자자에게 먼저 가지급금을 지급하고, 추후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최종 보상액 등이 결정되면 차액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원금의 110% 배상을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디스커버리 핀테크 글로벌 채권 펀드와 부동산 선순위 채권 펀드에서 환매가 지연되고 있는 금액은 각각 695억원, 219억원가량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팝펀딩 연계 펀드의 불완전판매 정황에 대해 자체 조사 중이다. 팝펀딩은 환매 중단과 별개로 자금 돌려막기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도 받고 있다. 자비스팝펀딩홈쇼핑벤더, 헤이스팅스더드림 등 해당 펀드들에서 환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금액은 약 355억원이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