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무전략적 인내만은 피해야

입력 2020-06-17 04:03

우리가 모르는 사이 미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여러 번 검토했다. 물론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았다. 미국이 공격 버튼을 눌렀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됐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심지어 진보를 표방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깊숙이 논의했다. 오바마의 대통령 재임 기간 끄트머리였던 2016년 9월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이 발단이 됐다. 미국 지상군 투입까지 검토됐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하나만 터져도 한국에서 수만명이 희생될 수 있다는 보고에 오바마는 계획을 접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취임 한 달 뒤였던 2017년 2월 조지프 던퍼드 당시 합참의장에게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방안을 요구했다. 그러나 던퍼드 합참의장은 시간을 끌며 미적댔다. 이 얘기들은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이면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인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 행정부의 민낯을 폭로한 책 ‘공포(Fear)’에 있는 내용이다.

북한의 도발은 레드라인을 넘고 있다. 대북전단 살포 문제에서 시작해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 채널을 완전히 끊더니, 급기야 16일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 말도 심하게 험해졌다. 평양 옥류관 주방장까지 등장해 “평양에 와서 국수(냉면)를 처먹을 때” 운운했다. 이 정도 사람들과 한반도 평화를 논의해야 하는가 하는 좌절감을 안겨준다.

신중한 스탠스를 취하던 우리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듯하다. 사이다 같은 반격을 퍼부을 때는 그때야 시원하겠지만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설득력 있다. 게다가 북한 문제는 생사가 달린 위기 상황으로 급격히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 트럼프도 변수다. 지금 펜타곤에서 선제공격론을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우리 정부 대응이 삶은 고구마를 물 없이 먹는 답답함을 안겨줬던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북한 문제를 풀려다가 한·미 관계가 더욱 꼬일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미국은 남북 관계 발전을 도와야 한다”면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이 조속히 재개되도록 대북 제재 예외를 인정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같은 동맹이라지만 대북 제재에 대한 한·미 간 인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에 나왔던 이유를 강력한 대북 제재 때문으로 보고 있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협상 테이블에 등장했다는 논리다. 우리 정부 일각에서는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이 거칠게 나오고 있다는 판단을 내놓는다. 반면 미국에선 한국이 대북 제재 예외를 요구하는 것이 북한의 ‘떼쓰기’를 부추긴다는 정반대 해석이 더 우세하다.

트럼프는 대선 승리 이틀 뒤였던 2016년 11월 10일 당선인 신분으로 백악관에서 오바마를 만났다. 이때 오바마는 트럼프에게 “한반도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headache)”라며 “북한이 당신에게 가장 큰 악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권력을 지닌 미국 대통령에게도 골칫거리인 북한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의 자존심이 상할 수 있어도 최악의 결과를 막겠다는 우리 정부 입장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독한 마음을 품은 북한이 앞으로 어떤 도발을 더 감행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우리 정부가 북한 달래기를 계속할 명분이 약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로 표현되는 대북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진전은 없었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또다시 인내심을 발휘한다고 해도 ‘무전략적 인내’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