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가장 큰 야만은 약육강식”

입력 2020-06-17 04:04
소설가 김훈이 16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작 장편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류사의 모든 혁명은 인간들이 약육강식을 못 견뎌서 벌어진 일이에요. 하지만 그 어떤 혁명도 이것을 돌파하는 데엔 기여하지 못했어요. 약자가 살기 위해 자신을 강자의 먹이로 내줘야 한다면 그건 인간이 살 수 없는 세상이잖아요?”

소설가 김훈(72)은 16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두드러지는 ‘야만’이 무엇인지 묻는 말이 나오자 내놓은 답변이었다. 김훈은 “앞으로 ‘코로나 시대’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놓고 예언가가 등장하고, 약장수도 나오고 있다”며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약육강식의 문화가 더 심화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이어 “가진 자들한테 양보하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이들도 있는데, 인간의 선의에만 호소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건 곧 발등에 떨어질 살인적 더위예요. 더위는 최하층부를 강타할 겁니다. 코로나 시대에 폭염까지 닥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정말 큰 문제예요.”

간담회는 그가 전날 발표한 신작 장편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소설의 끌차 역할을 하는 것은 김훈의 신화적 상상력이다. 그는 초(草)와 단(旦)이라는 가상의 두 국가를 등장시킨다. 초는 문명을 등진 채 살아가는 유목민의 나라이고, 단은 문자의 힘을 떠받드는 농경 국가다. 김훈은 이들 국가의 충돌을 통해 야만과 문명이 뒤엉키는 세계를 그려낸다.

김훈은 “화가가 물감을 쓰듯이, 음악가가 음(音)을 쓰듯이 언어를 다루려고 했다”며 “새로운 언어의 세계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적대감, 야만과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고대 한국사를 보면 거의 매달, 매일 싸워요. 삼국사기엔 피가 강물처럼 흘러서 방패가 떠내려갔다고 적혀 있어요. 당시 국가들은 자비를 중시하는 불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았는데도 그랬어요. 방패가 떠내려갈 정도로 싸운 적개심의 뿌리가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신작에서는 김훈의 전작들이 그렇듯 밑줄을 긋게 만드는 문장도 간단없이 이어지는데 이런 문장이 대표적이다. “수와 공은 다르지 않고 공과 수는 서로를 포함하면서 어긋난다. 모든 공과 모든 수는 죽음과 삶 사이를 가른다. 그러므로 공에서 수로, 수에서 공으로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 엎어지고 뒤집히는 틈새를 사람의 말로는 삶이라고 부른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