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그립다 영화의 감동, 더 그립다 극장의 감흥

입력 2020-06-20 04:05 수정 2020-06-24 19:26

“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어느덧 전생같이 느껴진다.”(@Him****)

“극장의 냄새, 커다란 스크린 불이 꺼지면 시작되는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싶은 이야기들, 크게 크게 계속 보고 싶기만 한 얼굴들, 영사기 너머로 반짝이는 은빛 먼지들. 그리고 무엇보다 무한한 감동이 있는 엔딩크레디트. 그립다 그리워.”(@sil****)

트위터에 ‘영화’ ‘극장’ 같은 단어들을 검색하면 이런 푸념들이 줄을 잇는다. 이제는 극장에 좀 가고 싶다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앗아간 지도 어느덧 반 년이 다 돼간다. 평일 퇴근 이후, 혹은 주말마다 으레 극장을 찾던 관객들의 발길이 뚝 끊긴지도 오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코로나19가 야속하기만 하다.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극장 앓이’는 더 심해지고 있다. 사계절 중 특히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시원한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유독 많기 때문이다. 1만원 언저리의 티켓 값을 지불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멋진 영화를 한 편 볼 수 있다니, 그만한 호사도 흔치 않을 터다. 뭐니 뭐니 해도 극장 나들이는 가장 대중적인 문화생활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영화계가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면서 서민들이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은 사실상 전멸했다. 신작 개봉이 연기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은 더 줄었다. 지난 2~5월 극장 관객 수는 전년 대비 90% 정도 감소했다. 6월 들어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반가운 신작들의 출격으로 지난 주말(12~14일) 관객은 50만명을 넘겼다.

코로나19에 맞선 구원투수들

개봉을 미뤘던 기대작들이 속속 관객을 만나고 있다. 김무열 송지효 주연의 스릴러 ‘침입자’가 지난 4월 포문을 연 데 이어 신혜선 배종옥이 주연한 ‘결백’이 10일 바통을 이어받았다. 현재 박스오피스에서 두 자릿수 점유율을 보이는 건 이들 두 작품뿐이다. 그러나 관객 규모 자체가 너무 적어 각각 150만명, 140만명인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7일에는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이, 18일에는 충무로 블루칩 이주영이 주연한 ‘야구소녀’,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 ‘사라진 시간’, 김인권 주연의 코미디 ‘열혈형사’가 스크린을 채웠다. 장르가 전부 다르다. 관객들로서는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 셈이다.

오는 24일 공개되는 유아인 박신혜 주연의 ‘#살아있다’는 한층 기대감을 끌어올린다. 한국형 좀비 스릴러로, 휴대전화나 인터넷이 모두 끊긴 상태에서 아파트 안에 고립돼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주연배우 유아인은 “이 영화를 보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듬뿍 가져가길 바란다”고, 박신혜는 “관객에게 기운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정상화까지는 ‘첩첩산중’

영화계는 여전히 위기다. 큰 타격을 입은 건 촬영 중인 작품들이다. 특히 해외촬영이 예정됐던 영화들은 일정 자체를 연기해야만 했다. 촬영 계획이 꼬인 건 물론, 적잖은 경제적 손실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시적으로 영화발전기금 부과금을 90% 감면하고, 영화기금 변경을 통해 확보한 170억원을 영화산업에 추가 지원키로 했으나 현실적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코로나19 여파로 신작 촬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배우 황정민, 하정우, 송중기(왼쪽부터). 각 소속사 제공

송중기가 주연해 기대를 모으는 ‘보고타’의 경우 콜롬비아에서 촬영을 진행하다 중단하고 귀국했다. 내년 촬영 재개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확실히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다. 황정민 현빈 주연의 ‘교섭’은 요르단 측의 입국 금지 조치로 인해 현지 촬영 계획을 접고 국내 촬영을 먼저 진행하기로 했다.

역시 모로코 촬영을 계획했던 하정우 주지훈 주연의 ‘피랍’도 크랭크인을 미뤘다. 마동석이 이끄는 ‘범죄도시2’는 베트남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함에 따라 국내 촬영을 먼저 시작했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이 조우한 ‘비상선언’도 촬영을 전면 연기했다. 더 큰 문제는 도미노 현상이다. 투자·배급사의 수익률이 역대 최악을 기록해 향후 기획·투자·제작이 줄줄이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랜선 영화’를 봐야 하는 현실

관객들이 집에 머물다 보니, 반사이익을 보는 건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사업자들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코로나19 수혜를 톡톡히 봤다.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넷플릭스 유료 이용자의 카드 결제 금액은 역대 최대인 43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 동기(185억원)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사냥의 시간’처럼 극장 개봉이 어려워진 국내·외 영화들이 넷플릭스 단독 개봉으로 아예 방향을 트는 경우도 생겨났다. OTT 사업자들은 자체 콘텐츠 제작에 적극 뛰어들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체험’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것 같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