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희망이 안 보여…”

입력 2020-06-16 19:58
지난 11일 충남 아산시에 있는 한 운수 업체에서 직원이 운행을 멈춘 9.5t 화물트럭 짐칸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하루 평균 2회 왕복 운행을 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일거리가 사라졌다. 화물차 기사들은 출근하지 않고 있다. 5t 화물차 기준 한 달에 20회 정도 운행하면 월 매출은 1000만원이다. 기름값 37%와 차량 할부비, 지입비, 보험비 등을 뺀 순수익은 400만∼500만원이다. 코로나 이후 운행 건수가 평균 11회로 절반 가까이 줄어 순수익은 200만원 수준이다. 운행이 없어 일을 하지 않더라도 할부비와 지입비, 보험비는 그대로 나가기 때문에 운수업자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암담합니대이…. 살아날 희망이 안 보입니더.”

박정우(가명) 사장은 30년째 완성 자동차 회사의 협력사를 주요 고객으로 하는 운수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달리려는 운수업자들의 발은 코로나19에 묶였다.

지난 11일 충남 아산시에 소재한 운수 업체 창고에서 한 직원이 부도난 거래처의 자동차 부품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찾은 충남 아산시에 있는 한 운수 업체. 회사는 울산과 경기도 화성에 있는 완성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납품해 왔다. 원래대로라면 한창 붐빌 오후 2시지만 회사 공장에서는 사람의 소리도, 기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박 사장은 30여년간 화물차 기사들과 일했다. 처절했던 IMF도 이겨냈다. ‘코로나’라는 불청객은 상생이 아닌 각자도생의 길을 강요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자동차 수출이 반 토막 나고 수요가 줄자 제조사는 생산을 멈췄고 영세 업체는 문을 닫았다. 여파는 운수 업체와 화물차 지입 기사들에게 번졌다.

지난 10일 경부고속도로 신탄진휴게소(서울 방향) 화물차 주차장에서 컨테이너 화물 기사가 장거리 운행을 마치고 운전석 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며 쉬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만 해도 자동차 부품이 공장을 가득 채웠고, 화물차는 부품을 바쁘게 실어날랐다. 그러나 지금 운수 업체 창고는 텅 비었다. 창고 한편에는 미수금 4300만원의 부도난 제조사 생산 부품과 두 달 전 베트남에서 들여온 부품만 남아 있었다. 박 사장은 지난달 처음으로 직원 23명의 월급을 제때 주지 못했다. 운송이 없으니 화물차 기사들의 일거리도 줄었다. 한 달 평균 20회 정도 운행하던 것이 11회 수준으로 줄었다. 운행은 감소했지만 고정 지출은 그대로다. 화물차 기사 대부분이 대출받아 차를 구매한다. 운행이 없더라도 차량 할부비와 지입료, 보험료 등 매달 200만∼300만원이 고정적으로 지출된다. 기사들의 이중고는 나날이 커진다. 박 사장은 “현재 8억8000만원의 미수금이 있다”며 “제조업 전체가 힘들다. 물량이 없는데 어쩌겠는가. 버틸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1일 경부고속도로 신탄진휴게소(서울 방향) 화물차 주차장이 비어 있다.

운수업은 자동차 산업구조 생태계의 최하층이다. 완성 공장이 1차 협력사에, 2차 협력사가 다시 3차 협력사에 하청을 준다. 하청이 하청을 만드는 구조다. 그런 하청 제조사로부터 일을 받아 부품을 납품하는 곳이 운수 업체다. 운수 업체의 현재는 절망적이다. 바이러스가 인간의 가장 약한 곳을 파고들어 잠식하듯, 코로나 이후 산업 구조의 가장 취약한 운수업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지난 11일 새벽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휴게소(서울 방향) 화물차 주차장에서 잠을 자고 난 운수업자가 출발에 앞서 화물차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글=윤성호 기자 cyberco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