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위기 극복의 최전선에는 경제 수장이 서 있었다. 외환위기 때는 이헌재 전 부총리가, 금융위기 대응에는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해결사’로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도 그때만큼이나 한 치 앞을 예단하기 힘든 미증유의 경제 위기로 꼽힌다. 세 번째 경제 파고를 넘어야 하는 역할을 맡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어깨도 그만큼 무겁다. 지난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 부총리를 만나 각종 경제 현안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만난 사람=고세욱 경제부장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가 ‘기본소득’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에서도 여러 의원이 간간이 제기했던 사안이다. 당시 답변했던 것처럼 기본소득은 고려할 변수가 4가지 있다. 우선 모든 국민에게 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지 여부다. 두 번째는 엄청난 재원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1인당 30만~50만원 얘기가 있는데 단순 계산하면 180조~300조원이 들어간다. 세 번째는 전 국민에게 똑같은 금액으로 줘야 하기 때문에 기존 복지체계와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동시에 검토해야 할 문제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해외에서 기본소득 유용성이 인정됐는지에 대해 사례 분석을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아직 한국 복지체계, 성숙도, 재정 여력 등 측면을 보면 부적절하다고 판단한다. 정부 내부에서도 검토하지 않는다. 제가 알기로는 핀란드에서 2년 시범 운영했는데 국민 삶의 질을 높였지만 근로의욕·분배 문제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스위스도 국민투표가 부결됐는데, 이유를 보니 기본소득 주는 대신 기존 복지를 많이 정리하는 것으로 전제해 국민들이 반대했다.”
-2차 재난지원금 얘기도 나온다.
“재난지원금 지급을 완료했을 때 국민들께 위안되고 소비 진작에 기여해 여러모로 기뻤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시·예외적 지원금이다. 2차, 3차 이렇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추가 재난지원금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명확히 말씀드릴 수 있다. 정부는 검토한 바 없다. 재정 여력이 있다면 더 어려운 계층에 돈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다.”
-재정 상황 우려가 크다. 국가부채 증가 속도도 너무 가파르다.
“48년 만에 세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적자를 내더라도 민간이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추경 재원에서 3분의 1은 세출 구조조정이다. 국민 부담 최소화하려는 조치다. 투입으로 인해 선순환 구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채무 지적에 공감한다. 절대 규모 면에서는 한국의 재정 여력이 있다는 게 국내외 평가지만 재정적자 비율 속도가 가파르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경계심 갖고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가채무 비율을 일정 이하로 유지토록 하는) ‘재정준칙’을 마련해보겠다. 전 세계 사례를 싹 다 살펴보고 있다. 8월에 내년 예산안 제출할 때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같이 제시할 수 있도록 목표를 잡고 작업하고 있다.”
-재정 문제, 기본소득 논란에 증세 얘기가 나온다. 금기시된 단어지만 마주해야 할 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코로나19 위기 때문에 국민들이 어렵고 기업들은 위기 돌파와 경제 회복을 하려는 상황에서 증세 논의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지금 시점에서 증세를 결정하는 것은 액셀 밟으면서 브레이크 밟는 양상이다. 증세는 관료적 시각보다 국민적 공감대가 우선이다. 최소한 올해 5개년 중기 재정계획을 짤 때 증세는 포함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세입 기반 확충 측면에서 탈루소득 포착 강화, 사각지대 세수 포착 등에 역점을 둘 생각이다. 또 금융세제 개편, 가상통화 과세 방안 등 과세체계를 합리적으로 하는 것을 고민 중이다. 세수 증대 효과가 크지 않아 증세 개념은 아니다. 세수 제약이 있다면 씀씀이를 효율화하면 된다. 보조금 및 사업 효과에 지적이 있었던 것들 중심으로 내년 예산 편성하면서 강력하게 세출 구조조정을 하겠다. 줄여야 할 부분은 확실히 줄이고 그 재원을 새로운 사업에 투입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
-최근 수도권 집값이 들썩인다. 언제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했는데.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 만들고 6개월 정도는 부동산 시장이 안정세를 유지했다고 판단한다. 최근 일부 지역 중심으로 풍선 효과가 포착되고 있다. 정부로서는 찔끔찔끔 정책을 가지고 몇 십 차례 할 생각 없다. 시장의 내성만 키운다.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들을 내부적으로 짚어보고 있다. 최근 눈여겨보는 것은 부동산 법인이다. 개인과 달리 이 분야가 느슨한 것 아닌가 싶어 상당히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부처 간 조율을 통해 필요하다면 필요한 시기에 대책을 발표하겠다.”
-코로나19 이후 경제를 얘기하지만 ‘한 걸음 모델’ 등의 제시에도 신산업 규제 문제가 여전하다. ‘한국형 뉴딜’이 코로나19 이후 대안이 될지도 궁금하다.
“부총리 임기 시작하면서 역점을 둔 것 중 하나가 신산업 분야다. 타다 모델을 염두에 두고 양보와 타협하는 모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타다는 아쉽지만 올해 한 걸음 모델 만들었다.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하면 다 같이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기득권도 수용하고 신규 진입자도 수용하는 절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포스트 코로나’는 워낙 커다란 변화지만 다른 어떤 나라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한국의 장점이다. 범정부 포스트 코로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고 경제 분야의 경우 산업 생태계 변화, K방역과 비대면 의료 등 집중 육성 산업 선별, 경제체질 변화 대비 등이 포함된다. 5년 정도 시계로 하는 ‘한국판 뉴딜’을 해보려 한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잡았는데 유럽연합(EU) 대사들과의 면담에서도 방향을 잘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급한 원격의료와 관련해 비대면 의료와의 용어 차이 및 도입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다.
“대면 진료가 원칙인데 5가지 예외가 있다. 도서벽지, 교정시설, 요양시설, 군부대, 원양선박은 예외다. 이들에 대해 원격의료 용어를 썼던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비대면 의료가 나왔다. 원격의료는 환자와 의사 간 물리적 거리가 있는 것인데 비대면 의료는 공간적 개념이 아닌 비접촉 개념이다. 같은 병원에 있어도 비접촉이면 비대면 의료다. 그런 면에서 비대면 의료가 더 큰 범위다. 그동안 의료 편익 측면에서 기재부가 주로 주장해왔는데 현실적으로 수용이 잘 안 됐다. 영리병원이나 의료 민영화 지적이 자꾸 나온다. 그래서 원격의료 대신 비대면 의료 용어를 쓰고 경제부처 대신 의료 편익 제고 측면에서 보건복지부가 추진했으면 한다. 복지부에서 충분히 사회적 논의를 거쳐 할 것이다. 환자 보호나 적정 수가 보장, 의료사고 책임 문제, 상급병원 쏠림 현상 등 여러 가지 지적에 보완 장치를 같이 가야 한다.”
-한국 경제는 수출이 견인한다.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대책 나왔지만 눈에 띄는 부분이 적다.
“수출이 우리 노력만으로 되지 않지만 한국 수출이 갖는 근성이 있다고 본다. 하반기에 코로나19가 좀 진정되면 수출 여건이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수출 돌파력이 작동할 것이다. 무역금융 134조원 제공, K방역 수출 지원 등의 대책을 제시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현장 애로사항을 청취해 다음 달 수출 지원 대책을 만들겠다. ‘수출 활력 제고’ ‘해외 수주 확대’ ‘기업 유턴 활성화’ 3종 대책을 다음 달 발표 목표로 작업 중이다.”
-위기 상황, 노동계와의 소통도 중요해 보인다.
“총리가 주도하는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각종 현안을 다루고 있다. 양대 노총이 다 들어간 협의체는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만으로 알고 있다. 기업과 관련해선 코로나19 사태로 조업을 못한 기업들이 하반기 경기 회복이 본격화할 경우 조업이 많아지는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다. 주52시간 제약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큰 틀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 탄력적으로 할 방안을 고용부와 협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크게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
“두 가지를 주문하셨다. 하나는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 인식을 정확하게 국민에게 전달하는 노력을 강화해달라는 것, 또 하나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하자’는 말씀이다. 저는 많이 와닿았다.”
-마지막으로 잘한 점과 못한 점을 꼽아 달라.
“잘했다 못했다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나중에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에서 고용 충격 최소화 노력을 했다는 평가를 받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위기극복 모습이 잘 나타나도록 대응하는 게 숙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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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세종 신준섭 전슬기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