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갈 곳 잃은 고령층… 다단계업체 집단감염 온상으로

입력 2020-06-16 04:04
서울 성동구청 직원들이 지난 12일 성동구 사근동의 한 데이케어센터에서 어르신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증상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성동구 제공

“빵이랑 우유 준다길래 몰려다니고 그랬죠.”

서울 노원구에 사는 안모(65·여)씨는 지난달 말까지 방문판매업체의 제품 홍보 행사를 찾아다녔다. 일주일에 3번 이상 참석한 적도 있다. 안씨는 “집에 있기 답답한데 (행사장에 가면) 노래도 틀어주고 먹을 것도 줬다”며 “소일거리를 찾아서 참석하는 노인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냄비 1개를 2000원에 파는 행사에 100여명이 몰렸다며 “거리두기는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서울 관악구 방문판매업체 리치웨이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들이 대부분 60대 이상 고령층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인들이 다단계 업체에 발을 들였다가 집단감염을 부른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정규직 노인들이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고, 노인복지 공공시설이 문을 닫으면서 자연스럽게 다단계로 몰렸다는 것이다.

15일 방역 당국에 따르면 리치웨이는 행사를 열고 제품을 홍보하거나 판매하는 다단계 업체였다. 밀집된 장소에 노인들 다수가 모여 거리두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함께 식사도 하면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방문판매 행사를 찾는 노인들이 늘었다고 본다. 일용직과 비정규직으로 연명하던 노인들이 ‘해고 1순위’가 돼 다단계로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한 다단계 업체에 종사하는 30대 김모씨는 “최근 두 달 사이 제품판매 교육을 받으러 오는 분들 중 50~70대 비중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실제 고령층이 상당수인 비정규직 일자리는 지난 4월 크게 감소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임시·일용직 취업자 수는 551만8000명으로 1년 전보다 78만3000명 줄었다. 연령별로 60세 이상 실업자 수는 18만9000명에 달했다. 1년 전보다 4만4000명(30.6%) 증가한 수치다.

노인들의 시선이 다단계 업체에 쏠리는 배경으로는 다단계 업체 특유의 호객행위가 손꼽힌다. 지갑이 얇은 노인들에게 생필품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헐값에 판매하면서 주목을 끄는 것이다.

임춘식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은 “3~4일간 노인들을 불러 라면이나 휴지 등 생필품을 무료로 주면서 관심을 끈다. 그러다 5만원도 안 되는 약재를 몸에 좋다며 몇십만원에 판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들은 재난지원금으로 제품을 사고 지인들에게 되팔아 용돈을 마련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고위험군인 고령층의 감염을 막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노인들의 빈곤, 여가 문화의 부족, 다단계 회사의 허술한 방역 관리 등 사회 문제가 복합적으로 터져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방역 관리가 안 되는 다단계 업체에 강력한 처벌을 가해야 노인들도 경각심을 가질 것”이라며 “특히 불법 ‘떴다방’ 업체는 수사 당국의 철저한 현장 점검을 통해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