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쯤 후에는 제게 또 다른 목회의 길을 보여주세요.’
옥인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다. 하루는 독일에서 목회하시는 한 목사님이 오후예배 설교자로 왔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 나를 가르쳐주셨던 중고등부 전도사님이었다. 예배 후 목사님과 내 고등학생 시절, 공군사관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신학을 공부하게 된 과정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그런데 목사님이 갑자기 진지해지시더니 한마디 툭 던지셨다. “호 목사, 독일 가본 적 있어?”
무슨 소린가 싶었다. 목사님은 나를 여기서 만난 게 하나님의 인도하심 같다며 내게 독일 한인교회 목회를 제안하셨다. 자신은 귀국하려던 차였고 누군가 자신이 시무하던 교회를 맡아줬으면 했는데 이왕이면 자신이 가르친 제자라면 더 좋겠다는 말씀이었다.
“이민 목회가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냐. 목회를 하면서 신학 공부도 할 수 있어.” “기도해 보겠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반 이상 마음의 결정을 한 상태였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유학에 대한 꿈이 있었다.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더 깊이 더 많이 알고 싶었다.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며 아이들 공부며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일들이 많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 같았다.
아내는 내 이야기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겠지요”라며 동의해줬다. 그동안 다닌 좋은 직장도 그만둬야 하고 타국 생활이 쉬울 리 없었지만, 묵묵히 나를 신뢰하고 지지해줬다. 옥인교회 부목사로 섬긴 지 4년 10개월 되던 때였다.
1993년 가족과 함께 독일 이민 목회 길에 올랐다. 부임한 곳은 뮌헨한독교회. 한국인과 독일인 등 80명 정도가 모이는 건강한 교회였다. 교인 대부분은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었고 나머지는 예전에 간호사나 광부로 건너와 독일인과 가정을 이룬 분들이었다.
뮌헨에 도착한 첫날부터 며칠 동안 우리가 사는 사택에는 교인들이 끊이질 않았다. 교인들은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했고 한 달가량 담임목사가 공석이었던 터라 신앙적 갈급함도 컸다. 교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도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집에 쌀이 똑 떨어졌다. 내가 부임하는 때에 맞춰 교인들이 10㎏짜리 쌀을 한 포대 준비해 줬는데 며칠 만에 쌀이 동난 것이었다.
쌀이 떨어졌다는 아내의 말이 그날은 새롭게 들렸다. 한국에서도 여러 번 들어왔고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타국 생활 며칠 만에 듣는 “쌀이 떨어졌다”는 말은 단순히 쌀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순간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시는 작은 시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쌀은 사지 맙시다.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도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셨잖아요. 우리 한 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으로 살아봅시다.”
나는 제법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고 아내는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