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존재감’ 김여정, 2인자인가 동반자인가 후계자인가

입력 2020-06-16 00:11

김여정(사진)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 공세를 총지휘하며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노동당 부서인 통일전선부, 정부 산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뿐 아니라 북한군 총참모부에 지시를 내린 것으로 미뤄 군부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최고지도자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북한에서 제1부부장급 간부가 당·정·군을 넘나들며 권력을 행사하는 건 이례적이다. 김 제1부부장이 후계자 지위에 올라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제1부부장의 전례 없는 위상이 처음 드러난 건 지난 5일 통전부 대변인 담화에서다. 통전부가 그를 ‘대남 사업을 총괄하는 제1부부장’으로 호칭하면서 다른 부서의 제1부부장들과는 차원이 다른 권한을 갖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어 김 제1부부장이 지난 14일 담화에서 향후 대남 조치 권한을 총참모부에 넘기려 한다고 밝히며 군 지휘권까지 행사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북한의 3대 권력인 당·정·군을 장악했다고 과시한 셈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15일 “김 제1부부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대신해 대남뿐 아니라 군사, 외교, 경제 등에서 전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 위원장은 2013년부터 김 제1부부장을 현장에 대동하며 수행을 시켰다. 오래 전부터 김 제1부부장을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서 염두에 둬온 것 같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백두혈통의 권력을 연장하는 수단으로서 김 제1부부장을 후계자로 고려하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관영 매체들이 “서릿발치는 보복행동”을 언급하며 긴장을 고조시킨 15일 인천 강화군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도 개풍군 마을. 바다 건너편에 철책과 북한군 초소(붉은 원)가 보인다. 강화=최현규 기자

김 제1부부장이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의 직속 부관으로서 실질적인 2인자라는 분석도 나온다. 명목상으로만 제1부부장을 갖고 있을 뿐 실제 권력은 당내 서열에서 앞서는 부위원장급 인사들보다도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제1부부장은 김 위원장 밑에서 총괄 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연륜 등을 고려해 명목상 제1부부장 직책을 준 것일 뿐 실제 위상은 통상적인 제1부부장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김 제1부부장은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선전선동부 소속 제1부부장이라는 사실이 김 국무위원장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선전선동부는 언론과 체제 선전, 사상 교육 등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조직지도부와 함께 노동당의 핵심 부서로 꼽힌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제1부부장 임명자로 재차 호명되면서 소속 부서와 역할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구체적인 정보는 최근까지도 파악되지 않았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 제1부부장이 군 지휘권을 언급한 데 주목하고 있다. 김 제1부부장이 후계자 지위에 올랐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중국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격언에 따라 권력 승계 과정에서 군부 장악 여부를 가장 중시한다. 실제로 김일성 주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후계자로 내정한 지 30년 가까이 지난 1991년에야 인민군 최고사령관직을 넘겨주며 권력 이양을 확정했다.

김 제1부부장의 급격한 부상이 북한 체제가 김씨 일가의 가족정치로 변모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는 시각도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김 제1부부장이 분명한 직함 없이 활동하고 있는데 북한이 가족정치가 돼 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김 제1부부장의 위상은 높기는 하지만 2인자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김 위원장의 대리인 정도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조성은 손재호 기자 jse130801@kmib.co.kr